[탈시설 장애인의 이야기①] 마음 약해질 때…
[탈시설 장애인의 이야기①] 마음 약해질 때…
  • 조희주 기자
  • 승인 2019.05.1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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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 시설을 감옥이라고 불리운다. 생각은 멀쩡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주로 사회단체가 장애인들에게 시설을 권한다. 상윤씨는 이 감옥을 나오기로 했다. 그가 시설을 나와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뉴스클레임 털어놨다.
장애인들에게 시설을 감옥이라고 불리운다. 생각은 멀쩡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주로 사회단체가 장애인들에게 시설을 권한다. 상윤씨는 이 감옥을 나오기로 했다. 그가 시설을 나와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뉴스클레임 털어놨다.

◇진짜 삶을 살고 싶은 상윤의 이야기

“이제 진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10살이 되던 해에 가족으로부터 떠밀려 시설에 들어갔다. 주0재활원, 삼0재활원, 석암..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내 삶은 20년 넘게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저 시설에서 이 시설로 떠밀리듯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 왔다.

시설에서 나온다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석암의 시설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같이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함께 나갑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삶에 대해 생각을 했다.

비록 공원 한 켠에 작은 천막이었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던지 간에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의 농성과 서울시청 기자회견, 서울시장 따라잡기 등으로 서울시는 우리에게 일정기간 거주할 집과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아니, 해줬다기 보다 우리가 쟁취했다는게 맞겠다.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녹록치 않았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사람들의 온갖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차들은 내 앞을 가로막았으며,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뿐이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10배가 넘는 시간이 걸리고, 그릇에서 입까지 음식이 도달했을 때 숟가락에 남은 음식은 거의 없었지만, 혼자서 할 수는 있다고 답을 했다.

내 상태를 확인하러 왔던 그는 나에게 아주 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책정했다.

가진 돈은 탈시설 정착금 500만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재산 때문에 번번히 기초생활수급권 대상자 심사에서 떨어졌다.

가족들이 나를 버렸다는 것, 수 십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것, 부모님의 재산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주민센터 공무원에겐 누군가의 넋두리로만 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시설로 돌아갈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시설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시설에서는 내가 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지역사회에서 10년을 지내는 동안 나에게도 좋은 변화들이 생겼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여러번의 이의신청을 통해 만족할 만큼의 시간을 받게 되었다.

공공임대 주택도 당첨이 되어서 진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렇게도 어렵던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직도 시설에서 남에게 얽매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마음을 먹고 하고자 하면 길은 열린다는 것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는 당신을 둘러싼 여러 관계들이 때때로 당신의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10년전 시설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옷장과 이불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때의 억눌렸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이 약해질 때 나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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