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장애인의 이야기②]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며
[탈시설 장애인의 이야기②]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며
  • 조희주 기자
  • 승인 2019.05.15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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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의 이야기

"싸우지 않으면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먹는 것만 준다고 해서 살아있는건 아니었으니까."

 

중학교 3학년 높은 곳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5년간의 병원생활, 그 후로 십여년 동안 이어진 어머니와 가족들의 헌신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형과 누나 그리고 동생 넷, 그렇게 칠남매를 홀로 돌보시느냐고 힘이 드셨던 걸까. 나 때문에 화병이 나셨던 건 아닐지.

서른, 시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는 싫었으니까. 그렇게 시설이라는 곳에 스스로 들어갔다.

석암, 이부일, 반찬에서 냄새가 났다. 쌀이랑 반찬이랑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매일 배가 아팠다. 원장은 툭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몽둥이질을 해댔다. 심지어 알몸으로 그 매를 받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마흔, 시설에서 도망쳐서 형의 집으로 갔다가 다시 잡혀왔다. 그날 원장에게 매를 맞고 나서 죽고싶었다. 손목을 그었다.

내이름, 홍성호 마흔 일곱, 중년이 되어서야 내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장은 내 이름을 죽은 사람으로 바꿔서 이중으로 생계비를 받아 챙겼다.

석암비대위, 싸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원장이 대장인줄 알았으니까. 시설의 비리 문제가 알려지고 비상대책위가 꾸려졌다. 정말이지 투쟁은 몰랐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것들이 같이 싸우니까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설에서 밥만 먹고 누워있을 수 없어서, 진짜 살아가기 위해 온 몸으로 투쟁을 했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려 했는데, 다른 형제들은 반대했지만, 형만은 나를 지지해줬다.

처음 수급통장을 내 이름으로 바꾸던 날,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휴대폰을 사고, 형에게 술 한잔을 사드렸다.

공공임대 주택 신청을 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활동지원사는 나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되어준다. 갇혀있지 않고, 자유로운 삶이 그저 행복하다.

이제 곧 65세가 된다. 65세 이상은 활동지원서비스가 끝나고 노인요양으로 바뀌게 되는 문제가 있다. 계속해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싶다.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 일곱 남매가 그 옛날 어느 날 처럼 한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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