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일본 먹이 주는 꼴?
‘나랏말싸미’ 일본 먹이 주는 꼴?
  • 박혜진 기자
  • 승인 2019.08.03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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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세종 폄훼 등에 평점 테러, 불매운동 벌어져
조철현 감독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
‘나랏말싸미’ 日 개봉 예정 '논란'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제공

“영화 시작할 때에도 봤다시피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도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나 판단 앞에서는 겸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관점에서 그런 자막을 넣은 것 같다.”

영화 ‘나랏말싸미’를 연출한 조철현 감독의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책 등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보는 건 매우 흥미롭다. 관객들은 다양한 콘텐츠로 인물의 삶에 경의를 표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얻으며 시각을 넓히는 계기로 삼는다.

영화 ‘나랏말싸미’를 통해 기대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다뤄 제작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개봉 후 ‘나랏말싸미’는 평점 테러와 불매 운동이 벌어졌고 관객들은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만들었다는 정설이 아닌 승려 신미가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는 가설을 차용해 논란에 휩싸였다. 세종대왕이 신미를 처음 만난 시간부터 조작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세종대왕을 우유부단하게 묘사하며 한글 창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돼 불편하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훈민정음을 편찬한 인물이 세종대왕이 아닌 신민대사(1403~1480)라는 가설은 과거 불교계 일각을 중심으로 퍼졌다. 신미대사 한글 창제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증거로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보다 8년 앞선 1435년 신미대사가 한글과 한자로 된 ‘원각선종석보’를 출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에는 한글 창제가 세종의 단독 업적으로 기록됐다. 세종이 신민대사를 만난 시기도 한글이 창제된 이후인 1446년으로 명시됐다. ‘원각선종석보’는 위작이며 시대 표기가 현대식으로 돼 있고 오탈자가 여럿 발견되는 등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언어 전문가 및 역사학자 평가도 나왔다.

영화는 허구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합당되는 선이 존재한다. 문제는 대중성에 눈이 먼 ‘나랏말싸미’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곁들여 창작한 ‘팩션’이 아닌 명백한 역사 왜곡을 했다. 

일각에서는 ‘영화는 영화로 보자’며 문제 삼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다. 그러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았다”, “벌써 자녀들에게 영화를 보여줬다” 등으로 뒤덮인 관람평을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역사를 모르는 10대 청소년들은 영화 줄거리를 쉽게 받아들일 위험한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나랏말싸미’가 일본에서도 개봉한다는 것이다. 현재 개봉일은 미정이지만 ‘나랏말싸미’ 측은 일본에서의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나랏말싸미’의 일본 개봉은 오히려 훈민정음을 깎아내릴 수 있는 먹이를 던져주는 계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줄을 잇고 있다. 

한편 조현철 감독은 역사왜곡 논란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조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난 수십 년간 세종대왕과 한글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소통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런 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 스태프들은 이 영화가 세종대왕과 한글의 위대함을 영화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라고 믿고 함께했다”며 “그것이 저와 그들의 진심이다. 그분들의 뜻까지 오해받고 있어 무척 아픈 지점이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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