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에게 쉴 틈이 어딨어요?"
[기획] "우리에게 쉴 틈이 어딨어요?"
  • 김옥해 기자
  • 승인 2019.08.12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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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휴게시간 보장”… ‘택배 없는 날’ 동참 호소
13~15일 택배주문하지 않으면 택배기사 휴가
박홍근 의원, 지난 5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발의
모두 퇴근한 시간, 택배기사들은 그때부터 오히려 더 바삐 움직인다. 한낮 더위를 피해 택배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지난 8일 서울시 마포구 한 아파트 주변에 주차돼 있는 택배차량이다. 차량 안에는 낮에 배송하다 남은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다. 김옥해 기자

“무더위요? 우리한테 그런 거 없어요. 시간이 돈이다보니, 쉴 새가 없죠. 특히 요듬 같은 무더위에는 차라리 야간 작업이 더 수월해요.”

한 택배회사 기사의 말이다. 지난 8일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의 아파트 단지 앞 택배 트럭 불빛이 보였다. 밤8시에도 불구하고 물류차량엔 배달해야 할 물건으로 빼곡했다. 건너편에는 아파트 입구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는 택배 기사가 보였다. 땀방울은 바닥에 선명히 찍혔다. 그날 서울 최고기온은 36도에 육박했다. 

“더우신데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건넨 인사에 그는 잠깐 웃음을 보이고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연신 허리를 구부르며 배송지 확인에 한창이다. 한낮 더위를 피해 최대한 빨리 배송해야하기 때문에 꼬박 5시간을 쉼없이 일한다. 그통에 식사도 불규칙해졌다. 그는 “워낙 물량이 많다보니 내내 일해도 다 채우지 못한다. 땀을 워낙 많이 흘리다보니 건강도 나빠졌다”며 “다들 여름휴가를 떠나느라 바쁜데 저녁 약속도 어려워 올해 가족 여행도 사실상 포기상태다. 돈벌어 먹고 살기가 여간 어렵다”라고 푸념했다.

이처럼 택배노동자들은 주6일, 한주 74시간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언제 쓰러져도 놀랍지 않다”라고 할 정도지만 제대로 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태배노조와 택배연대노조가 택배기사의 휴식 보장을 위해 8월 16, 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택배기사 사시에서 ‘휴가 갈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지난달 15일 ‘택배 노동자 기본권 쟁취 투쟁본부’(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택배노동조합)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과 휴가 한 번 갈 수 없는 택배노동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하도록 양해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다. 최근 과로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우체국 집배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인 55.9시간보다 18시간 많은 셈이다.

택배노동자들은 “택배회사는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려먹지만 휴가나 병가를 낼 때는 노동자들을 ‘개인 사업자’라며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가를 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여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연차유급휴가 보장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만큼 문제를 해소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들은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물량이 평소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양해하고 택배회사가 결심한다면 여름휴가가 가능하다. 8월 15일이 쉬는 날이다 보니 8월 16일이 ‘택배 없는 날’로 마련될 경우 최소 2일은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택배기사가 주고 간 '택배 없는 날' 국민행동 제안 호소문
택배기사가 주고 간 '택배 없는 날' 국민행동 제안 호소문.

소비자들에겐 13~15일 사흘 동안 택배 주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택배와 함께 받은 ‘택배 없는 날’ 국민행동 제안 호소문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에게 휴식이 보장되도록, 국민 여러분의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고 적혀있다.

한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이 마침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생활물류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통계구축 △창업지원 △전문 인력 육성·관리 △생활물류시설 확충을 위한 지원·특례 등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정안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표준약관을 사용하도록 하고 서비스종사자를 위해 표준계약서 작성, 자격요건, 안전조치, 이륜차로 대표되는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 인증제 도입 등을 담았다. 

박홍근 의원은 “법 제정을 통해 미래 물류산업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각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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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삼 2019-08-12 23:39:19
공공 우체국탁배와 비교하면
노동3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민간 택배회사들이
워낙에 열악하니 이건 호소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