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기억들①] 11전 경찰이 죽인 사람은 더 약자였다
[용산참사 기억들①] 11전 경찰이 죽인 사람은 더 약자였다
  • 김동길 기자
  • 승인 2020.01.20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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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진=용산참사진상규명위

용산참사는 왜 다들 잊었나

"11년차 회사원" 조귀동 저자의 <세습 중산층 사회>가 상당한 화제다. 

'잘 나가는 1%에 비하면 우린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도 어렵다고'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해 왔던 대략 상위 10~20% 계층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제 대세가 된 듯하다. 겸손하게(?) 중산층을 자처하면서 책임은 최소화 하고 실속은 알뜰히 챙기는 상위 계층.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 최근 잇따라 출간된다. 대충 꼽아봐도, <20대 80의 사회>,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아파트 게임> .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제인스빌 이야기>, <힐빌리의 노래> 등도 이런 문제의식과 닿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 새로 나올 때마다 반응치가 점점 커진다.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20대 80' 구도에 동조한다. 한 2~3년 전에 이런 이야기하면, '진보적인 척 하면서 실제로는 수구 세력에 간접적으로 힘을 싣고 우리 편을 이간질하는 제5열', 뭐..이런 취급 받곤 했는데, 격세지감이다. 

자칭 중산층(실제로는 상위 계층)이 주도하는 정치 사회 담론은 확실히 야바위꾼의 눈속임을 닮은 데가 있다. 

'딱 우리가 가리키는 저기만 봐. 저기, 정말 나쁘다. 그치' 

뭐..이런 거. 

- '1 대 99' 그러니까 특권층 vs. 시민.
- '20대 80' 그러니까 자칭 중산층(공론장에서 과잉 대표된 그룹) vs. 서민 & 빈민(공론장에서 존재감 없는 그룹).

위의 두 가지 구도에서 내가 후자 쪽으로 확 쏠리게 된 계기는 지난 총선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뭐 탄핵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나, 선거 결과를 보나 대충 사회 분위기를 보나, 잘하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다. 

그러니까 한편 안도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해졌다. '1 대 99' 구도에서 생기는 모순은 완화될 거 같은데, '20 대 80' 구도에서 생기는 모순은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상위 20%, 자칭 중산층, 실제로는 상위 계층. 대략 이 그룹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게 지금의 민주당 다수 &정의당 절반쯤인 듯한데, 이들 정치세력은 정말이지 '20대 80' 구도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선 깡그리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정말 상투적인 이야기,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요' 따위의 답변을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떠드는 수준에서 한치도 못 벗어나는 듯 싶었다. 

실제로 역사를 봐도, 연산군 폐위한 뒤 들어선 중종 시기나 광해군 폐위한 뒤 들어선 인조 시기의 정치라는 게, 나쁜 1등이 싹쓸이 하는 걸 막는 대신 2~10등이 토실토실 살찌게끔 하는 것이었던 듯 싶었고, 그렇게 되면 하위 계층의 삶은 자칫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뜯겨나가는 몫 전체는 더 커질 수 있으니까.

한국의 자칭 중산층들은 정말이지 조선시대 양반들과 닮았는데, 이렇게 닮은 점 가운데 하나가 '감성적인 공감대'에 대한 유난스런 강조다. 물론, 감수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필수 요소이고,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감성이야 말로 계급 편향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공감? 보편적인 공감은 없다. 누구나 선택적인 공감을 한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병이 들면 눈물 펑펑 흘리던 누군가는 공장에서 일하다 목이 잘려 죽은 비정규직 청년의 소식 앞에선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걸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그게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어쨌든 검찰 개혁 국면에서 이런 선택적 공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이란, 온전히 이성적이기만은 어렵다. 검찰에 대한 분노, 경찰에 대한 분노, 국정원에 대한 분노...등이 없다면 과연 누가 개혁하자고 하겠나. 

답답한 것은 그 분노 역시 몹시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검찰의 흑역사를 이야기한다. 맞다. 검찰 나쁘지. 시험 엘리트에 대한 반감도 곁들여져 있다. 역시 맞다. 한국은 엘리트 후보를 선발하기만 할 뿐, 엘리트로 기르지는 않는 나라다. 그저 선발됐을 뿐인데 거들먹거리는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다 이해하고, 또 나 역시 상당히 공감하는데, 그래도 답답하다. 균형이 깨져도 너무 심하게 깨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폭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는 사례가 너무 편중돼 있다. 

2009년은 권력기관의 폭주로 사람들이 죽었던 해다. 11년 전이니, 앞의 책 저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해겠구나 싶다. 

2009년 5월, 검찰의 폭주로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있었다. 경찰의 폭주로 철거민이 불에 타 죽은 사건이다. 

둘 다 청와대 눈치만 볼 뿐, 인권에 대한 고려나 민주적 통제는 없었던 권력기관이 폭주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사람의 공감이란 대단히 선택적이므로, 다들 2009년 5월의 비극만 기억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게 사람이니까. 

그래도 약간의 균형은 맞췄으면 좋겠다. 2009년에 검찰만 사람을 죽인 게 아니었다. 경찰도 사람을 죽였다.

검찰개혁도 필요하지만 경찰개혁도 필수적이다. 검찰개혁 하자며 나왔던 목소리 크기의 딱 반만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경찰개혁은 정말 필요하다. 경찰이 죽인 사람이 더 많다. 경찰은 더 잔인하게 죽였다. 경찰이 죽인 사람은 더 약자였다.

*해당 글은 <뉴스클레임>이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을 기획하면서 찾은 한 활동가의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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