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레임]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된 후 각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구역 지정을 신청한다. 인천공항 주변의 영종도, 송도, 김포매립지에 대한 경제특구지정을 통한 물류 거점지역 육성과 경기도 인근에 '국제적인 관광․휴양단지'를 만들고 서울시는 여의도를 '국제업무․지식기반산업 중심지', '국제금융단지', '관광․숙박 전시단지'를 개발하고, 마포구 상암동에 '디지털 미디어 센터'를 조성키로 했다.

특히 동북아 중심도시 또는 금융거점 도시로 개발한다는 목표하에 청계천복원 이후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여 외국자본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경제특구 내에서는 자유무역을 보장하고, 외국인 투자기업에 각종 사회기반시설 및 인프라가 제공하게 된다.

세금 감면 및 행정적인 우대 정책을 취하는 대신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일부 노동권과 파견법에 명시된 대상 업무와 기간을 제한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구상에서도 드러나는데, 청계천 복원사업의 결과로써 경제특구 지역에 대한 벨트를 형성하고 일대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이며, 저층지대의 상공업지대를 정리하고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었다.

2022년 촬영,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입정동 일대.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2년 촬영,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입정동 일대.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1년 재·보궐 선거에 다시 '재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택공급,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도시계획 규제 완화, 역세권 개발을 비롯한 과거 개발 계획을 현재에 와서도 수정해 다시 적용했다.

단적인 예로 용산정비창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1만 호 주택공급 계획도 폐기하고, 부지 70% 이상을 업무·상업시설로 조성할 계획이다. 총사업비 30조 원이 넘는 개발 호재로 부동산 가격 상승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2022년 7월 27일 ‘빈곤사회연대’는 성명을 발표하고 '용산정비창 부지의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사례를 들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며 "부족한 서울 도심의 공공토지를 기업소유의 땅으로 고스란히 넘기는 계획이다.

특히 공공의 돈으로 인프라를 미리 조성해줘 민간 개발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계획도 없어 기업 특혜와 민간의 투기적 개발을 조장하겠다”는 것으로 성토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개발 종합선물 세트 수준의 공약이 제시됐다”며 “이러한 개발정책이 시장 임기 내 시행된다면 서울은 공사판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신속 통합기획’ 확대한다는 구상을 두고 있는데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최근 건설경기가 침체하여 있는 실정에 비춰 성과를 얻을지 의문이다. 과거처럼 청계천에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던 사람의 생존권은 물론 노동자의 노동권조차 침해받는 형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촬영, 세운 5구역 시행사를 상대로 임대상가를 요구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2년 촬영, 세운 5구역 시행사를 상대로 임대상가를 요구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00년대 들어 개발을 둘러싸고 주목할 것은 '신개발주의'라는 방식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한마디로 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생태, 환경, 역사, 문화,' 등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전면에 걸고 개발을 미화하거나 포장해 나간다. 기존의 개발은 ‘필요’를 채우기 위한 개발을 양산했다면, 신개발주의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논리였다.

하지만 개발사업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용적률, 건폐율, 토지가, 조세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민간 개발자는 개발에 드는 재원을 조달해 사업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과거 개발 주역이 국가였다면 신개발주의에서는 국가와 민간 부문이 공고한 파트너와 동반관계를 이룬다는 것에서 크게 구별된다.

당시 강남과 강북의 균형개발, 청계천복원과 그 주변 재개발, 뉴타운 개발 등 하나같이 우리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가져다줄 사안에 이러한 논리가 관철되어 나갔다. 청계천복원 공사를 둘러싸고 도시경쟁력 강화라는 미명아래 생태, 환경, 역사, 문화, 등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로 포장된 채 외형적으로 서울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개된다. (신개발 주의를 멈춰라, 출판사 환경과생명, 조명래, 최병두. 13쪽)

이처럼 도시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동반되는데, 일방적 개발에 경종을 울리며 반대로 ‘산업생태계’의 가치가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자 서울시도 세운상가 일대를 중심으로 ‘메이커시티, 4차산업혁명' 등 현란한 수사로 치켜세우며 일부를 '재단장' 하거나 스타트업을 통해 청년 예술가, 제작자와 장인, 그리고 연구자를 동참시킨다. 세운상가 일대 공구상가는 겉보기에 남루해 보여도 상당히 역동적이며 경쟁력을 갖춘 생산 공간이다.

본격적으로 제조산업문화가 들어서면서 세운상가와 주변 전기-전자 부문은 기존의 상품들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각종 산업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진원지였으며, 새로운 품목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공통기술을 터득하고 쌓아왔다. 재료를 가공하고 제작하여 세운상가 인근 유통시장을 통해 '판매라인'을 형성했다.

평화상가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의류봉제산업은 '모방'을 통해 디자인을 개발하고, 유행과 제작의 속도를 빠르게 순환시킴으로써 소비공간을 획득해 나갔다. 상호경쟁보다 점포 간 신뢰를 바탕으로 '어떤 물건이든 구입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동종품목을 집적하는 과정에서 품종과 생산량을 배치 또는 재배치하는 기술과 경험을 쌓아왔다. 다양한 하청 조직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간산업과 연결해 ‘시제품’ 제작지대가 되거나 학생들의 작품제작과 실험 그리고 창업 무대가 되었다. 이를 통해 거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상당한 '고용 기회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냈고,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연줄망을 통해 수많은 자영업자와 숙련노동자들이 서울을 넘어 세계적인 독특한 ‘산업지구’를 만든 것이다.

10년 전 세운상가의 모습, 지금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10년 전 세운상가의 모습, 지금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는 최근 청계천을 둘러싼 '레트로 문화'의 확산에도 기여한다. 과거의 전통을 회고하고 추억하는 ‘복고주의’를 뜻하는 문화현상이 청계천 인근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오래된 건물과 한옥 등 사라질 뻔한 공간이 다시 리모델링으로 태어나거나, 세운상가 일대, ‘힙지로’의 성지로 일컫는 을지로 공구상가에 청년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황학동의 벼룩시장 일대에 젊은 층이 유입되고 명소화되어 버려져 부유하거나 고장 난 상품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빈티지’ 패션과 물건이 재생되는 과정을 통해 소비자는 과거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재해석 되는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 나간다. 하지만 레트로 산업의 등장은 경제침체와 맞물리면서 기존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과잉 생산물이 유행이 지난 상품으로 바뀌고 시장으로 방출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현대인이 과거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청계천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버려졌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을 수집-재생-생산함으로써 그들의 꿈과 기억을 외면화하고, 눈썰미와 손재주를 바탕으로 한 모방과 해체의 기술은 '다품종소량생산다품종 소량생산'의 체계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청계천탐험. 청계천에 말걸기, 류제홍. 20쪽)

한편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모든 시민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도시는 어느 한두 사람, 특히 '돈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의 이익이 관철되는 곳만이 아니라, '성별 인종'을 떠나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기에 누구든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시를 ‘작품’에 비교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용가치'의 회복을 위해 도시거주자들은 ‘전유의 권리’와 도시 행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 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유’는 한 개인이 배타적으로 시장에서 상품으로 매매할 수 있는 권리라면 '전유'는 다수의 도시거주자가 공동의 '작품'인 도시에 대한 일상적 향유, 사용의 권리를 말하며 도시의 모든 영역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참여의 권리’ 등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공간의 재현'은 특정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담는다고 말한다.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공간이 재단되고, 도시계획자의 설계에 의해 공간이 구획되고, 배열되는 기술 관료들의 공간”인 것이다. (강현수, 도시에 대한 권리, 책세상, 28쪽-32쪽)  

우리는 이 대목에서 청계천 일대 '경제특구와 신개발주의' 담론의 확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도시에 관한 권리’는 앙리 르페브르의 저작 중 하나로 오래전 프랑스 68혁명 당시 하나의 시위 구호로 사용될 만큼 당대 도시 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청계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것에 직면한다. 특정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건대 신개발주의는 최근에도 전개되고 있으며 비슷한 문제들이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있는 파이프의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있는 파이프의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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