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칼럼] ‘수신제가’ 부족한 후보가 ‘치국’을?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지은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의 이야기다.
정철은 막강한 집안 출신이었다. 4남 2녀 가운데 막내인 정철의 큰누나는 인종 임금의 귀인으로 들어갔고, 작은누나는 왕족에게 시집갔다.
덕분에 정철은 어렸을 때부터 누나들이 있는 궁궐을 드나들었다. 훗날 명종 임금이 되는 왕자와는 놀이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갈 수 없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면서 정철의 매부인 왕족은 살해되고, 큰형은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아버지는 북쪽 국경지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정철은 아버지의 유배지까지 1000리 길을 걸어서 따라가야 했다. 1년 후에는 유배지가 경상도 영일로 바뀌었다. 정철은 다시 남쪽으로 1000리 길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를 도와 ‘나무꾼소년’ 노릇도 해야 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죄인과 유배지에서 함께 거주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내리면서, 정철의 어머니는 둘째형만 데리고 전라도 순천으로 떠났다.
어린 정철은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다. 15살이 되어서야 사면 받은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도 담양에서 가족이 모여 살 수 있었다. 옛날 정치판은 이런 일이 적지 않았다.
오늘날의 정치판에서도 가족까지 고생시키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는 바람에 집 팔아 선거 빚 청산하고 쪼들리게 된 사람이 여럿이다. 병역 기피다, 불법 유학이다 하면서 자녀들이 공격받는 사례는 ‘단골메뉴’다. 가족에게 ‘마음고생’을 시키는 것이다.
지금 선거판도 예외일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장남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에 대한 공격으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 후보의 장남은 ‘상습’ 도박에 마사지업소 논란이다. 윤 후보의 부인 김씨는 ‘허위 경력’에 이른바 ‘쥴리’ 의혹이다.
진흙탕 싸움을 그만둘 마음들은 없는 듯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고발사주 태스크포스’를 ‘윤석열 가족비리 국민검증 특별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비리검증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위원회가 ‘특별’하게 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민주당은 60억대 자산가인 김씨가 월 7만 원대 건강보험료를 냈다”는 것까지 찾아내고 있다. “가족에 대한 검증은 행사할 권한에 비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자녀에 대한 검증보다 배우자에 대한 검증에 더 비중을 둬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가족을 싸잡아서 비난하고 있다. “3대를 이어서 범죄자 집안”이라는 공격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대선 후보는 ‘수신과 제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치국’을 하려고 나선 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