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외식가격 공표제는 또 뭔가?
몇 해 전, 정부가 ‘지방물가정보’라는 자료를 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냉면값이 가장 싼 곳은 충북으로, 한 그릇에 6571원이라고 했다. 가장 비싼 지역은 서울의 8154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지역별 가격을 비교한 자료였다.
지역별로 가격을 조사해서 공표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가격을 내리도록 경쟁을 시키거나, 압력을 넣기 위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민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정보’로 보였다. 냉면 한 그릇 조금 싸게 먹으려고 서울에서 충북까지 먼 길을 ‘달려갈’ 서민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에 따른 ‘교통비’와 시간 낭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정부가 지역별 음식 가격을 조사하려면 돈과 시간, 인력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비용은 국민이 낸 세금일 것이었다. 공무원이 자기 돈으로 조사할 리는 없을 게 뻔했다. ‘탁상행정’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방안이 또 나오고 있다.
23일부터 치킨, 햄버거 등 12개 외식 품목의 프랜차이즈별 가격과 등락률을 매주 공표하겠다는 ‘외식가격 공표제’가 그렇다. 치솟는 외식물가를 억제하는 차원에서 시장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공개 대상 품목은 죽, 김밥, 햄버거, 치킨, 떡볶이, 피자, 커피, 짜장면, 삼겹살, 돼지갈비, 갈비탕, 설렁탕 등이라고 했다.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을 더욱 죄는 정책이라는 불평이다.
소비자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업체별 가격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데다, 소비자들도 이를 알고 사 먹고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배달 수수료 공시’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소비자원 홈페이지를 통해 배달 수수료 현황을 공개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배달대행업체의 배달료는 지역, 거리, 날씨, 시간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월 1회 공시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미 배달 플랫폼에 공개되어 있고, 배달 수수료가 껄끄러운 소비자들은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한 뒤에 직접 찾으러 가고 있다.
정부는 배달 수수료 현황을 서울 등 일부지역부터 공개하고 앞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몫은 ‘차기 정부’가 할 일이다.
무엇보다 행정력으로 잡는 물가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제과업체의 경우 정부의 가격 압박 때문에 제품의 포장 모양과 크기는 그대로 둔 채 내용물만 슬쩍 줄였던 사례도 있었다. 결국 소비자만 골탕 먹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