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칼럼] 정도전의 ‘국무총리론’

2022-03-29     김영인 편집위원
플리커

 

“임금이 그르다고 말해도 재상은 옳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이 옳다고 말해도 재상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를 버리고 임금의 비위만을 맞추려 하거나 임금의 총애를 받아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이미 자신의 직책을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42~98)은 이 같은 ‘재상론(宰相論)’을 주장했다.

정도전은 “위로는 임금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재상을 규정했다.

그러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재상이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막강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사권·군사권·재정권·포상 및 형벌권 등을 두루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임금을 제쳐놓고 단독으로 권한을 휘두를 수는 없다고 했다. 일의 성격에 따라 대사(大事)는 임금과 협의해서 처리하고, 소사(小事)는 전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임금을 보필하지만, 임금의 명령과 의지를 무조건 따르면 안 된다고도 했다. 임금이 옳은 일을 하면 적극적으로 따르고, 옳지 않은 일은 끝까지 거부해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정권은 반드시 재상에게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정권은 단 하루라도 재상의 손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정권이 재상에게 있지 않고, 언관(言官)에게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정권이 궁관(宮官)에게 넘어가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도전은 재상의 책임에 대해서도 말했다. 권한이 막강한 만큼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상은 임금을 실질적으로 대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실정(失政)으로 인해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임금 혼자 책임을 지도록 하면 안 된다. 재상도 책임을 함께 져야한다. 재상은 하늘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이런 권한과 책임 때문에 재상의 자질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자질이 부족한 재상에게 일을 맡겼다가는 자칫 그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상의 자질을 ①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한다(正己) ② 임금을 바르게 한다(正君) ③ 사람을 가려서 쓴다(知人) ④ 일을 공정하게 처리한다(處事) 등으로 규정했다.

정도전은 고려시대의 재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잘못된 제도는 고쳐야 새 나라 조선이 반석 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당·송 제도를 받아들여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재상이라고 했는데, 말기에는 그 권한이 미약해 문서처리에만 급급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6조의 장관과 다를 바가 없었고 국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정도전은 이 같은 신념으로 조선 개국 전 9년, 개국 후 7년 동안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총리 후보로 10명 넘게 거론되고 있다.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대통령실 경제수석까지 ‘원팀’으로 이어갈 최적임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뛰어난 총리가 선임되어야 경제 회복도 국민 통합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는 정도전의 ‘재상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