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탱자나무 섬’
[뉴스클레임] 제나라가 안자(晏子)를 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안자는 뛰어난 관리였지만 키가 작고 외모도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말솜씨는 탁월했다.
초나라는 강대국이었다. 그래서인지 초나라 임금은 콧대가 높았다. 제나라의 ‘볼품없는 사신’ 따위는 우습게 여겼다.
안자는 초나라 도성 앞에서부터 푸대접이었다. 성문조차 열어주지 않은 채 성문 옆 조그만 문을 통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안자가 항의했다.
“이 문은 개구멍 아닌가. 내가 ‘개나라’에 온 사신이라면 당연히 이 구멍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나라가 아닌 초나라에 온 사신이다.”
더 골탕을 먹였다가는 초나라 임금이 ‘개나라 임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판이었다. 성문을 열고 맞아들여야 했다.
초나라 임금은 안자를 만나서도 밑으로 보고 있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구나. 그대와 같이 생긴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다니.”
안자가 그 말을 냉큼 받았다.
“우리나라는 상대에 따라 사신을 보내고 있다. 좋은 나라에는 뛰어난 사신을, 그렇지 못한 나라에는 나처럼 못난 사신을 파견하고 있다. 나는 가장 못났기 때문에 초나라 사신으로 왔을 뿐이다.”
만만치 않았다. 초나라 임금은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마련해 놓은 ‘작전’이 있었다. 부하를 시켜서 꽁꽁 묶은 죄수를 자신이 안자와 만나고 있는 곳 앞으로 ‘우연히’ 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초나라 임금은 그 부하를 불러 세워 무슨 죄수인가 물었다. 부하는 ‘각본’대로 얘기했다.
“이 자는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초나라 임금은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왜 붙들리는 도둑은 모두 제나라 사람인가” 했다.
그렇다고 말문이 막힐 안자가 아니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귤나무는 회수 남쪽에 있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서 자라게 되면 탱자가 열린다고 했다. 물과 풍토 때문이다. 우리 제나라 백성은 제나라에서는 도둑질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초나라에 오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니, 초나라 풍토가 나쁘기 때문 아닌가.”
초나라 임금은 안자에게 깨끗하게 당하고 말았다. 정중하게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다. 풍토가 수틀리면 좋은 귤이 탱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주위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지역이 있는 듯싶어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영혼이 없는 섬”이라고 주장한 곳이다. ‘여의도’다. 정치판이다.
정치판에 ‘영입’된 인재가 결국 정치판에 휩쓸리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당대표”라고 높게 평가했던 이 전 대표부터 ‘내부총질’이라고 했다. 대표 자리를 잃고 ‘전투모드’에 들어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막말의 달인’ 소리를 들을 만했다. ‘개고기’라는 막말도 사양하지 않고 있다. 자신을 ‘검투사’, 윤 대통령을 검투사와 싸울 수밖에 없는 ‘황제’로 비유하고 있다. ‘신군부 절대자’라는 말도 동원하고 있다.
‘청년 당원’들은 대한민국 정치판의 ‘주특기’인 ‘편 갈라 싸우기’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 ‘여의도 2시 청년’, ‘여의도 10시 청년’ 운운하면서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여의도 2시 청년’은 ‘사회생활 경험 없이 정치권을 어슬렁거리는 청년’이라고 했다. ‘여의도 10시 청년’은 ‘국회의원 이름을 빌려 오전 10시에 소통관을 어슬렁거리는 청년’이라고 했다.
‘젊은 피’가 수혈되면서 정치판이 ‘비약’할 것으로 여겼던 국민의 기대감은 씁쓸해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나라당 대표 당시 대학생들과의 ‘타운 미팅’에서 이렇게 지적했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밖에서 프레시(fresh)한 사람이 들어와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정치판에 들어와도 이들을 이지메하고, 키워주지 않는 게 정치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