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행!] 그리운 통영… 강구안 가는 길목의 통영해저터널
[뉴스클레임]
2021년 3월 말일 석 달 생활에 필요한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승용차에 가득 싣고 통영으로 향했다.
제주에 갈 때처럼 살 집, 갈 곳에 관한 계획은 전혀 없었다.
통영에 도착한 날 운이 좋아서 당일 해가 지기 전 미륵산 아래 근사한 집을 구했다.
4개의 방과 넓은 거실 화장실이 2인 복층 구조의 집이었는데 생활에 필요한 집기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집안에서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통영 시내가 얼핏 보이고 동쪽으로는 한가하게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남쪽엔 병풍처럼 서 있는 미륵산의 푸른 숲이 편안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봄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이 딱 삼등분되어 눈에 들어오고, 파랑과 초록 바탕위에 하얀색, 주황색, 빨간색 혹은 노란색이 어울리고 있었다.
케이블카와 미륵산,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이라는 중앙시장, 상상을 자극하는 동피랑 벽화마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충렬사와 세병관, 남쪽 바다의 매물도와 욕지도 등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어느 곳에 가도 그 걸음이 탄성과 기쁨을 불러내는 곳이 통영이다.
3개월 통영여행의 첫 나들이로 미륵산을 우선 생각했었다. 남쪽으로는 온갖 섬들이 흩어져 손짓하는 바다가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강구안 시내와 그 너머의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문을 나서며 소문으로 들었던 강구안의 어시장과 그 뒤의 동피랑 벽화마을이 더 궁금해 바다를 건너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지난 밤 멀리 보이는 통영 시내의 불빛이 참으로 아름답게 건너와서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한 까닭이다.
걸어서 해저터널을 지나 시내의 중앙시장까지 갈 생각으로 집을 나서 바닷가에 섰다. 통영반도, 거제도, 한산도 미륵도로 둘러싸인 이곳 바다는 참으로 잔잔해서 호수를 바라보는 듯했다. 간혹 배가 지나갈 때 작은 파도가 밀려오지만 사납지 않고, 다만 편안하게 찰싹일 뿐이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두어 척의 배를 바라보며 걷다가 해저터널 입구에 서고 보니 이 거리도 저쪽의 바다만큼이나 한가하다. 한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고갔을 거리 모습이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옛이야기일 뿐이다. 길가의 상점들은 대부분 문 닫은 지 오래되었고 지나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외지에서 놀러온 이들이 해저터널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 기념사진 몇 장 찍고는 차를 타고 사라진다.
1932년 해저터널이 완공되기 전에 이곳엔 착량교라는 작은 다리 하나가 미륵도와 육지를 연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판데목이라 불렀던 이곳에 1년4개월 동안 흙을 파내고 시멘트를 섞어 부어 작은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 위로는 동서 방향의 물길을 내어 배들이 미륵도 남쪽으로 멀리 돌지 않고 통영 강구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통영 해저터널은 통영읍내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지만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통영운하 위의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미륵도와 육지를 연결하고 있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