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행] 그리운 통영… 미륵산 입구 봉수골

2023-03-15     오근식 객원위원
아무것도 없는 듯 고요하지만 적어도 한나절, 통영마저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 봉수골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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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곳이 봉수골이다. 아마도 미륵산 꼭대기에 있는, 그 기원이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는 봉수대 때문에 봉수골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이차선 도로가 휘어짐 없이 직선으로 완만하게 뻗어 올라갔다. 길 양쪽엔 제법 나이든 벚나무가 도열해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 끝이 미륵산 등산로 입구의 작은 광장이다. 봉수골에 들어서면 바다는 사라지고 조용한 마을만 남는다. 강구안 중앙시장이나 동피랑처럼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등산객 외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다.

전혁림미술관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을 들어서면 예쁘게 가꾸어진 작은 책방이 반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봉수골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혁림미술관이다. 봉수골 도로에서 미술관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예쁜 집은 책방이다. 집도 작고 정원도 작은데 아기자기하게 잘 꾸몄다. 이 작은 책방에서의 편안함과 한가함은 덤이다. 책방 뒤에 미술관이 있다.

전혁림미술관에서는 건물벽에서부터 작품 감상을 시작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전혁림은 환갑이 넘어서야 중앙 화단의 주목을 받은 화가다. 1916년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잠시 강습회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혼자 공부한 화가다. 광복 후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윤이상,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통영을 떠나 마산과 부산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예순이 넘은 70년대 후반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을 화폭에 담았다. 그 때부터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일화가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2005년 90세에 개최한 그의 작품 전시장에 노 대통령이 방문해 전시돼 있는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청와대에 걸기에는 너무 컸다. 그래서 작은 크기의 새 작품을 완성해 청와대에 걸었다.

봉수골 길 양 옆의 벽 곳곳에 전혁림 화백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당산목’이라는 제목의 1973년 작품이다. ‘도미당산’과 당산목인데 가볼만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전혁림은 통영의 화가다. 통영의 화가답게 그의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색은 코발트블루다. 하늘이 파랗고 바다가 더욱 진하게 그 색에 물들어 있으니, 통영에서는 그 누구라도 이 색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외지에서 통영에 들어와 미륵도에 올 때 대부분 통영대교를 건너는데, 통영대교 끝에서 좌회전 하면 통영케이블카 하부종점 방향이다. 좌회전 대기 중 눈을 들어 정면의 옹벽을 바라보면 타일로 이루어진 대형 추상화가 보인다. 전혁림의 작품이다. 봉수골에 들어와 걷다보면 길 양옆의 벽 곳곳에 그의 작품 사진이 함께 걸려 있다. 

전혁림미술관은 전 화백이 통영에 돌아온 후 3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의 작품을 주제로 한 타일 장식이 되어 있는 건물 외벽을 살펴보고 들어서면, 그가 남긴 작품과 그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미술관을 나오기 전 마음에 남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의 작품이 새겨진 컵을 구입했다. 생활 소품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그의 작품이 새겨진 도자기 생활 소품들도 구입이 가능하다. 그의 작품 소장은 쉽지 않겠지만 컵과 접시 등 생활 소품을 통해 그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다. 전혁림미술관에서 강렬한 푸른색의 마법에 젖으면 컵 하나쯤은 손에 쥐고 싶어진다.

봉수골 안내지도가 80여곳의 명소를 표시하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미술관에서 나오면 다양한 식당이 기다린다. 푸짐한 생선구이 밥상, 일본식 튀김덮밥, 아귀찜, 멍게비빔밥과 단돈 3000원의 국수집도 눈에 들어온다. 통영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북식 냉면집도 이 근처에 있다. 빵집과 잘 꾸민 카페도 곳곳에 있다. 봉수골은 통영마저 잊고 행복하게 한나절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봉수골의 보호수인 느티나무는 1861년 3월 25일 세 사람이 이 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주는 비석까지 서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