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행] 그리운 통영… 미륵산 입구 봉수골
[뉴스클레임]
미륵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곳이 봉수골이다. 아마도 미륵산 꼭대기에 있는, 그 기원이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는 봉수대 때문에 봉수골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이차선 도로가 휘어짐 없이 직선으로 완만하게 뻗어 올라갔다. 길 양쪽엔 제법 나이든 벚나무가 도열해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 끝이 미륵산 등산로 입구의 작은 광장이다. 봉수골에 들어서면 바다는 사라지고 조용한 마을만 남는다. 강구안 중앙시장이나 동피랑처럼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등산객 외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다.
봉수골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혁림미술관이다. 봉수골 도로에서 미술관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예쁜 집은 책방이다. 집도 작고 정원도 작은데 아기자기하게 잘 꾸몄다. 이 작은 책방에서의 편안함과 한가함은 덤이다. 책방 뒤에 미술관이 있다.
전혁림은 환갑이 넘어서야 중앙 화단의 주목을 받은 화가다. 1916년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잠시 강습회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혼자 공부한 화가다. 광복 후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윤이상,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통영을 떠나 마산과 부산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예순이 넘은 70년대 후반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을 화폭에 담았다. 그 때부터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일화가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2005년 90세에 개최한 그의 작품 전시장에 노 대통령이 방문해 전시돼 있는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청와대에 걸기에는 너무 컸다. 그래서 작은 크기의 새 작품을 완성해 청와대에 걸었다.
전혁림은 통영의 화가다. 통영의 화가답게 그의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색은 코발트블루다. 하늘이 파랗고 바다가 더욱 진하게 그 색에 물들어 있으니, 통영에서는 그 누구라도 이 색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외지에서 통영에 들어와 미륵도에 올 때 대부분 통영대교를 건너는데, 통영대교 끝에서 좌회전 하면 통영케이블카 하부종점 방향이다. 좌회전 대기 중 눈을 들어 정면의 옹벽을 바라보면 타일로 이루어진 대형 추상화가 보인다. 전혁림의 작품이다. 봉수골에 들어와 걷다보면 길 양옆의 벽 곳곳에 그의 작품 사진이 함께 걸려 있다.
전혁림미술관은 전 화백이 통영에 돌아온 후 3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의 작품을 주제로 한 타일 장식이 되어 있는 건물 외벽을 살펴보고 들어서면, 그가 남긴 작품과 그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새겨진 도자기 생활 소품들도 구입이 가능하다. 그의 작품 소장은 쉽지 않겠지만 컵과 접시 등 생활 소품을 통해 그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다. 전혁림미술관에서 강렬한 푸른색의 마법에 젖으면 컵 하나쯤은 손에 쥐고 싶어진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다양한 식당이 기다린다. 푸짐한 생선구이 밥상, 일본식 튀김덮밥, 아귀찜, 멍게비빔밥과 단돈 3000원의 국수집도 눈에 들어온다. 통영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북식 냉면집도 이 근처에 있다. 빵집과 잘 꾸민 카페도 곳곳에 있다. 봉수골은 통영마저 잊고 행복하게 한나절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