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이집트 미라도 ‘빈부와 귀천’
[뉴스클레임]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사람들이 ‘미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비싼 미라는 이런 방법으로 만들었다.
“쇠갈고리로 콧구멍을 통해 뇌수를 끄집어내고, 갈고리가 닿지 않는 부분은 약품을 주입해서 씻어낸다. 그 다음에 예리한 돌로 옆구리를 절개하고, 오장육부를 야자유로 깨끗이 씻고, 향료로 다시 씻는다. 그리고 향료로 복강(腹腔)을 가득 채우고 봉합한다. 그러고 나서, 천연소다에 담가 70일 동안 놓아둔다. 70일이 지나면 품질 좋은 아마포로 만든 붕대로 전신을 감싸고 다시 아교처럼 끈적끈적한 고무를 바른다.…”
미라 기술자는 이렇게 만든 미라를 가족에게 넘겨줬다. 가족은 사람 형태의 목관을 만들어 미라를 넣고 봉한 뒤, 묘실(墓室) 내의 벽 쪽에 똑바로 세워 안치했다는 것이다.
‘중간급’인 미라는 훨씬 간단했다.
“복부를 절개하지 않은 채 삼나무 기름을 주입한다. 천연소다에 담갔다가 70일이 되면 기름을 복부에서 꺼낸다. 천연소다는 살을 용해시키기 때문에 피부와 뼈만 남게 된다.…”
가장 ‘싸구려 미라’는 더욱 수월했다. 마치 ‘푸대접’이었다.
“하제(下劑)를 사용해서 내장 속을 세척한 다음 70일 동안 천연 소다에 담가둔다.”
이처럼 미라에도 ‘빈부와 귀천’이 있었다. 끗발이 막강해야 ‘호화봉분’도 가능한 것이다.
‘유의 사항’도 있었다.
저명인사의 아내가 사망했을 때는 즉시 미라로 만들지 않고 3∼4일 후에 미라 기술자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기술자들이 혹시 그 ‘유체’를 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아름다운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미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 때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명나라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미라를 ‘목내이(木乃伊)’라고 했다.
“천방국에 78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신(捨身)을 해서 중생을 구제할 것을 자원,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곡기를 끊고 꿀(蜜)만 먹었다. 한 달이 지났더니 대소변이 그대로 꿀이었다. 사망한 후에 시신을 석관(石棺)에 넣으면서 꿀을 가득 채워 시신이 잠기도록 했다.… 100년이 지난 뒤 관을 파서 열어보니, 밀제(蜜劑)가 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향료였는데 ‘천방국’에서는 꿀이었다. 꿀은 ‘천연방부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일 듯싶기도 했다.
미국 뉴욕대의 발굴팀이 이집트 중부의 아바도스라는 곳에 있는 람세스 2세 신전에서 2000여 개나 되는 양머리 미라를 찾아냈다는 소식에 뒤져보는 ‘헤로도토스의 미라’다. 양머리와 함께 개, 야생염소, 소, 가젤, 몽구스의 미라도 발견되었다는 보도다.
이집트 사람들은 실제로 동물도 미라를 만들었다. 헤로도토스는 ‘악어 미라’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테베와 모이리스 호수 주변의 사람들은 악어를 ‘극도로’ 신성시했는데, 황금 귀걸이와 팔찌를 채워서 키웠다. 살아 있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다뤘다가 신에게 바쳤다. 그렇게 죽은 악어는 미라로 만들어 ‘성스러운 묘지’에 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