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어떤 나라의 권력 다툼

2023-08-28     문주영 편집위원
픽사베이

 

[뉴스클레임]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피를 불러왔다. 임금의 목이 단두대에서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었다는 왕비 역시 같은 운명이 되어야 했다.

혁명은 성공했지만 다음 순서가 있었다. 혁명세력 간의 권력 싸움이었다.

그게 절차였다. 권력을 쪼개서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는 없었다.

지롱드파자코뱅파가 치열하게 다퉜다. 자코뱅이 이겼다.

하지만 자코뱅이 이겼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도 절차는 또 있었다. 이번에는 승리한 자코뱅 내부에서의 싸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권력이란 혼자서 독차지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코뱅을 이끄는 3명의 지도자인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치고받는 권력투쟁에 들어갔다.

3명의 지도자 가운데 마라는 일찌감치 죽었다. 마라는 덕분에 지저분한 이전투구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성격이 대조적이었다. 당통은 남성적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여성적이었다.

그렇다고 성격이 싸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다. 둘은 격렬하게 맞섰다. 마침내 로베스피에르가 승리했다.

승패가 결정되었는데도 마지막 절차는 더 있었다. 패자인 당통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칼자루를 움켜쥔 승자가 정적을 남겨둘 수는 없었다. 언제 자기 자리가 위협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주위에서 당통에게 외국으로 피신하라고 권했다. 당통도 자신에게 닥칠 일쯤은 충분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통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프랑스가 나를 내쫓는다면 다른 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옥뿐일 것이다. 조국을 신발바닥에 담고 갈 수는 없다.”

당통은 법정에 섰다. 법정의 관례에 따라 이름과 주소를 밝혔다.

내 이름은 당통이다. 혁명 중에 제법 알려진 이름이다. 내 주소는 얼마 후에 ()’가 될 것이다.”

당통은 단두대 밑에서도 외쳤다.

사람들에게 내 목을 보여줘라. 보여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승자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휘둘렀다.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냈다. 공포정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 역시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극단적인 정치는 민심을 떠나도록 했다. 결국 당통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혁명은 1789년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 오른 것은 1794년이었다. ‘진흙탕 권력 투쟁의 기간은 5년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칼자루를 휘두른 것은 불과 몇 개월이었다.

알다시피, 다음 타자는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를 일으키더니 5년 후인 1804년 스스로 왕관을 쓰고 황제가 되고 있었다. 명분은 그럴 듯했다. ‘강력한 지도력을 원하는 국민의 여망에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천하의 나폴레옹도 오래 집권할 재간은 없었다. ‘권불십년이었다. 1813년 엘바섬 귀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어떤 나라의 용병 그룹수장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이 나라 권력자는 유능한 사업가였지만 힘든 운명을 타고 났고, 실수도 했다며 애도하고 있다. 실수라는 단어에 무슨 의미를 담았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