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삼국지 진궁의 ‘여포 탓’
[뉴스클레임] ‘삼국지’ 앞부분 이야기다.
조조는 ‘폭군’ 동탁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하고, 여백사의 집으로 도망쳤다. 여백사는 자신의 친구의 아들인 조조를 반갑게 맞으며 음식을 준비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여백사는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피신 중인 조조였다. 조조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던 중 밖에서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묶어놓고 죽이자”고 하는 말도 들려왔다. 조조는 여백사가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착각했다.
조조는 ‘아차’ 싶어서 선수를 쳤다. 여백사의 일가족 8명을 모두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백사의 가족은 조조에게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묶어놓고 잡으려던 참이었다. ‘아뿔싸’가 아닐 수 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조조는 다시 부랴부랴 도망치다가 술을 사서 가지고 오던 여백사와 마주쳤다. 조조는 그 여백사마저 살해하고 말았다. 자기 가족을 죽인 조조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조는 그러면서 말했다.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도록 할 수는 없다.”
‘삼국지’는 이런 조조를 잔인하고 의리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여백사의 살해 현장에는 진궁(陳宮)이 조조와 함께 있었다. 진궁은 조조가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조조 밑에 들어간 부하다. 동탁을 제거하는 모의에도 참여했고, 조조와 피신도 같이 했다.
그렇지만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조조를 떠나 여포의 ‘작전참모’로 들어갔다.
진궁은 여포 밑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조조와 싸워 몇 차례 이기기도 했다. 그랬다가 결국은 싸움에 패해 여포와 함께 조조에게 생포되고 말았다.
조조는 ‘사람 욕심’이 많았다. 자기를 버리고 떠난 진궁이지만, 다시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잡혀온 진궁에게 말했다.
“그대는 계략이 뛰어나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잡혔다. 이제 뭐라고 하겠는가.”
진궁이 여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잡히고 말았다. 내 말에 귀만 기울였어도 포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여포는 승리를 자만하곤 했다. 자신의 무예와 ‘적토마’ 덕분이라는 자랑이었다. 진궁은 그 여포의 잘못을 비난한 것이다.
진궁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실패하게 된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 여포를 잘못 선택한 자신의 처신부터 반성해야 좋았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상전으로 모셨던 여포를 대놓고 비판하고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어떤가. 선거철이 되어서인지, 정당을 떠나는 사람이 또 여럿 등장하고 있다. ‘철새’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신당’이 설립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떠나면서 몸담았던 조직에 대체로 ‘쓴소리’를 하고 있다. ‘내 탓’은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일 것이다.
진궁은 여포를 욕하면서도 다시 함께 일하자는 조조의 제안을 거부하고 목에 칼을 받았다. 반면 대한민국 정치판은 그렇지 못한 듯싶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