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불타는 비단’에 기겁한 로마군
[뉴스클레임] 로마제국의 기병이 파르티아제국의 기병과 넓은 벌판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 기병은 4만, 파르티아 기병은 1만에 불과했다. 게다가 로마 기병은 패배를 모르는 상승의 군사였다. 당연히 게임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전투는 예상대로였다. 파르티아는 ‘중과부적’이었다. 파르티아 기병은 후퇴하기 바빴다.
로마 기병은 맹렬하게 추격했다. 뒷덜미를 거의 낚아챌 만한 거리까지 쫓아갔다.
그런데, 별안간 신호와 함께 도망치던 파르티아 기병이 말머리를 돌리며 로마 기병을 막아섰다. 전열을 가다듬은 것이다.
그 순간 로마 기병은 혼란에 빠졌다. 파르티아 기병의 몸에서 난데없이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접근하면 불길이 옮겨붙어 타죽을 것 같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로마 기병은 황급히 후퇴했다. 그러자 파르티아 기병이 거꾸로 로마 기병을 추격했다. 혼비백산한 로마 기병은 전의를 잃고 말았다.
결과는 로마의 대참패였다. 전사가 2만, 포로도 1만이나 되었다.
당시 로마 기병을 공포에 떨도록 만든 시뻘건 불길의 정체는 ‘비단’이었다. 파르티아 기병이 갑옷 속에 숨겨두었던 비단 옷자락을 ‘불덩어리’로 착각한 것이다. 비단은 이렇게 '신무기'로 로마의 군사 앞에 등장하고 있었다.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파르티아제국은 중국의 비단을 로마보다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로마보다 파르티아가 중국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국은 파르티아를 안식국(安息國)이라고 부르며 비단을 거래하고 있었다. 파르티아는 중국에서 수입한 비단으로 로마에 본때를 보인 것이다.
중국의 비단 제조법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쿠스타나의 국왕이 벌레에서 실을 뽑아서 비단을 짠다는 정보를 어렵게 입수할 수 있었다. 쿠스타나는 오늘날의 신장과 위구르 지역에 있던 나라로 중국에서는 ‘호탄(于闐)’이라고 불렀다.
쿠스타나는 그 비단의 제조법을 빼내기 위해 ‘결혼 작전’을 폈다. 작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왕녀가 머리의 장식 속에 누에와 뽕잎을 숨겨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비단은 삽시간에 서역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이 ‘비단 기술 유출 사건’이 산업스파이의 ‘원조’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산업스파이의 역사는 자그마치 수천 년이나 되는 셈이다.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일당 9명 가운데 ‘형제’ 2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다. 동생이 붙들려서 구속되자, 형이 이어받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집요한 형제’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이 얼마 전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형량을 대폭 강화한 새 양형기준을 내놓았다는 소식도 있었다.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할 경우 최대 형량을 징역 9년에서 15년으로 높였다고 했다. 또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하면 징역 18년까지 가능하도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형제가 ‘작당’까지 해서 기술을 빼돌리는 현실이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막기 어렵다(十人之守 難敵一寇)’고 했다. 기업은 문단속을 더욱 엄하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