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의 문학칼럼] 창 밖에는 하루 종일 눈이 폭폭 내리고
[뉴스클레임]
열흘 전쯤 광주의 어느 기관에서 하루 종일 심사를 하는데, 심사장 창 밖에는 눈이 쉬지 않고 내렸다.
광주 5.18이 끝난 뒤, 5.18의 참혹함과 허망함과 기대감 모두를 눈과 밤 기차와 난로를 등장시켜 쓸쓸한 배경을 이루게 한 시 ‘사평역에서’의 곽재구 시인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 ‘심사는 좀체 끝나지 않고’, ‘심사장 밖에는 하루 종일 눈이 폭폭 내렸다’.
아침 10시가 되기도 전에 읽기 시작한 심사 자료들이 저녁 6시가 되어도 안 끝났다.
마침 그 기관이 1980년 5.18 때 엄청난 풍경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 양동 시장과 광주천을 가까이 하고 있어 나는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침묵하며’,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심사 자료만 뒤적이면서 가끔 화장실에 가 ‘한 줌의 눈물을’ 세면대에 ‘던져 주었다’.
예약해 둔 귀경 열차 시간을 두 번씩이나 늦추면서 가까스로 심사를 마치고 광주송정역으로 기차를 타러 갔다.
지하철 송정역엔 송정리 출신의 임방울 명창의 전시장이 있다. 송정역에 갈 때마다 한 번 둘러보련 했지만 좀체 기회를 내지 못하다가 기차 시간이 남아 있어 수박 겉 핥기 식으로나 임방울 명창을 만났다.
눈 속에 묻힌 옛날의 송정리 풍경이 그려졌을까? 웬일인지 그가 작창하여 부른 ‘추억’이 떠올랐다. 그가 잘 부른 ‘쑥대머리’가 아니고...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든가 그리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임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 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야서
각도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 속에 들어서도 나는 못잊겄네
원명이 그뿐이었든가 이리 급작스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운전할 때 늘 듣는 ‘추억’. 임방울이 정인 ‘산호’가 죽었을 때 지어 불렀다는 소리.
눈은 계속 퍼부어 온 세상이 다 하얗다. 단가 ‘사철가’의 한 대목처럼 ‘월백, 설백, 천지백’하니 나의 백발은 당연한 것. 그러나 ‘세상사 쓸쓸하더라/나도 어제 청춘일러니/오는 백발 한심허구나~’.
내 흑발 시절 보내고 이제 백발이 되어가는데도 세상 모양이 시원치 않다. 서울에 가기 싫었다. 서울에 가면 도처에 쓸쓸한 일 천지!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