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저 PER’ vs ‘저 PBR’
[뉴스클레임] 외국인 투자자에게 우리 주식시장의 ‘직접투자’가 허용된 것은 32년 전인 1992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간접투자’만 허용하고 있었다.
당시 증권업계는 증시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증시에서 어떤 종목을 사들일 것인지 전망하고 분석도 했다. 결론은 ‘대형 우량주’의 ‘장기투자’였다.
자동차업종은 현대자동차, 전자업종은 삼성전자 등 우리 ‘대표기업’의 주식에 장기투자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오늘날 표현으로 ‘K 주식’쯤 되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 증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안전한 투자’를 선호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렇지만 증권업계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 ‘대표기업’의 주식 따위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들이 사들인 주식은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주식이었다. 소위 저평가되어 있던 종목이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증시를 장악할 궁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바람에 ‘저(低) PER’ 종목의 가격이 증시 개방과 함께 치솟았다. ‘황제주’라는 이름도 그때 등장했다.
‘황제주 1호’는 태광산업 주식이었다. 당시 태광산업의 자본금은 상장기업 평균인 381억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55억 원이었다. 그랬으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안성맞춤인 규모였다.
증권업계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더 있었다. 그들은 ‘장기투자’가 아닌 ‘단기투자’를 선택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소규모 투자자금’으로 유통주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해서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랬다가 팔아치우고 다른 주식에 손을 댔다. 전형적인 ‘단타매매’였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초기에 들여온 자금은 3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당시 상장주식 시가총액 70조 원에 비하면 아주 빈약했다. 그들은 그 ‘허술한 밑천’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우리 투자자들은 외국인이 사는 종목을 덩달아 사들이기 바빴다. ‘뇌동매매’였다. 그랬다가 증권 용어로 ‘상투’를 잡고 있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처럼 시작부터 우리 증시를 ‘놀이터’로 삼고 있었다. 그들이 주식을 사들이면 주가지수인 ‘코스피’ 자체가 오르고, 팔아치우면 ‘코스피’도 떨어질 정도였다.
지금 증시에서는 ‘저 PER’가 아닌 ‘저 PBR’ 바람이 불고 있다.
PBR은 ‘주가순자산비율’이라고 했다. PER이 ‘주가를 기업의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인데 비해, PBR은 ‘주가를 기업의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라고 했다. 용어는 좀 다르지만 ‘저평가 종목’이라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정부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저 PBR’ 종목이 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승자’는 외국인 투자자가 될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순매수’한 상위 20개 종목은 가격이 뛴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그들이 사들인 종목을 되레 팔아치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의 ‘저 PBR’ 열풍이 과거의 ‘저 PER’처럼 되는 일은 없어야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