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행] 이천리 해파랑길6코스① 중화학공업단지 슬쩍 바라보고 태화강변 향하는 아기자기한 산길
[뉴스클레임]
부산 오륙도를 출발한 해파랑길은 4코스가 끝나는 진하해수욕장 명선도 앞까지 바다를 떠난 적이 없었다. 5코스에서 회야강을 따라 울산 시내로 향한 길은 6코스에 접어들며 아직 사람이 다듬지 않은 모습이 남아 있는 산길을 따라, 울산을 관통하며 바닷가의 대규모 중화학공업지대를 가로막고 있는 태화강가로 나간다.
2021년 10월 2일 해파랑길 5코스를 온산읍 근처까지 8km 정도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3박4일의 일기예보를 보며 날짜를 조절하다 10월 12일 일찍 5코스의 종점인 덕하역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오후에 온산읍에서 덕하역까지 5코스 남은 길을 걸었다. 9km 정도 되는 길이었는데 철도와 도로 그리고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서 부지런히 리본과 스티커를 찾아 걸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덕하에 들어섰는데 마침 오일장 날이었다. 광역시에 아직도 오일장이 남아 있다니.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가 끝나면, 장이 서던 거리는 상설 재래시장의 모습으로 바뀌고, 다소 무질서하게 보이면서도 온갖 생필품들을 편하게 사고파는 지금의 모습은 여기 왔던 상인들과 늙은 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늦은 시간이어서 장이 파하기 직전인 장터에서 여행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현장에서 만들어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간식 몇 가지뿐이었다.
이제는 문을 닫은 정거장 인근에서 해파랑길5코스가 끝나고 6코스가 시작되기 때문에 유일한 숙소에 방을 잡았는데 지난 10여 년간 여행 다니면서 묵었던 숙소 중 가장 좋지 않았다. 대로변이어서 밤새 대형 화물차가 빠르게 지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침구에서 냄새까지 난다. 살면서 늘 내 입이 즐거운 음식만 먹고, 보기에 좋은 장면만 보고 살 수는 없으니 이러한 고역도 여행의 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며 억지 잠을 잤다. 아침엔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6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해파랑길6코스는 온산중화학공업단지 입구를 1km쯤 스치듯 지나고 짧은 공원길을 거쳐 숲으로 들어간다. 지난밤에 슬쩍 비가 내린데다, 언제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해서 땅도, 풀도, 나무도 그리고 하늘도 촉촉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숲길이었다. 광역시에 아직 남아 있는, 거의 ‘날 것’인 숲속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는 신선했다. 조금 전 지나온 길 건너에 온갖 화학 공장과 기계 공장이 가득한데 이 숲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잡목이 덤불과 섞여 울창한 숲이 있는가 하면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들이 제 자리를 굳게 지키며 슬쩍 햇빛을 들이면서 키 낮은 풀과 나무를 키우는 숲도 보인다.
잠시 숲길을 걷고 내려오니 선암호수공원이다. 둘레 약 4km 남짓한 선암저수지는 1964년도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울산공업단지와 온산공업단지를 위한 비상급수용 공업용수를 저장하고 있다. 고창의 운곡저수지와 마찬가지로 선암 저수지 골짜기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 실향민이 되었다. 그들의 희생과 양보로 지금은 많은 주민들이 이곳에 찾아와 걸으며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즐기고 있다.
이슬비가 슬쩍슬쩍 바람과 함께 볼을 스친다. 연꽃은 오래 전에 졌고 이제는 잎이 질 차례가 되어 하나 둘 대궁이 꺾이고 있었다. 아직 코로나19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던 때여서 걷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해파랑길은 호수공원 안쪽에, 마치 제주 오름 속의 알봉처럼 우뚝 솟은, 작은 봉우리 아래 물가로 나 있었다.
걷는 동안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전혀 없고 마주 오는 사람들만 보인다. 사람들 많지 않은 호숫가 길이어서 마스크는 쓰지 않고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눈길을 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걷는 우리 부부를 나무라는 눈초리다. 애써 눈길을 피하며 부지런히 걸어 그 길을 빠져나오며 알았다. 일방통행 길이었다. 아마도 코로나19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산책길을 일방통행으로 정한 듯했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에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