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선거 공해’
[뉴스클레임] 전라도 강진에 정관일(鄭寬一)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정관일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밭에 일하러 나갔는데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관일은 아버지가 추위에 떨고 있는데, 자식이 따뜻한 방에 있을 수 없다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머니가 말리자, 나가는 대신 창문 아래 앉아서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돌아온 뒤에야 편하게 쉬고 있었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멀리 장사를 나가서 ‘평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정관일은 그 편지를 품에 안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었다. 정관일은 “글자의 획이 흔들린 게 아무래도 아버지가 병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중에 돌아왔을 때 물었더니, 과연 그때 병이 심했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의 ‘정효자전(鄭孝子傳)’이라는 글에 나오는 얘기다.
지금은 ‘카톡’이나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는 세상이다. ‘손편지’라는 것은 거의 사라진 오늘날이다.
그렇지만 손편지에는 정약용의 글처럼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을 미루어서 짐작할 수도 있다. ‘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반면, 카톡이나 이메일에는 그런 게 없다. 딱딱할 뿐이다.
그런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책홍보물’을 ‘손 글씨’로 썼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료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겠다”며 “교통, 안전, 문화, 치안, 건강,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달라졌다.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한 위원장은 이른바 ‘여의도 사투리’를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조 심판론’을 내세우고, 상대정당을 비판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말싸움’이 지겨워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또 다른 ‘선거 공해’에도 시달리고 있다.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어서 들여다보면 일면식도 없고 이름조차 생소한 사람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후보의 홍보 문자다.
그렇지 않아도 "돈 싸게 주겠다"는 대부업자의 문자 때문에 왕짜증이던 유권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삭제’ 버튼을 누르고 있다. 덕분에 배터리 충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있다.
설문에 참여하면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는 여론조사기관의 문자도 가세하고 있다. 설문에 끝까지 대답하면 ‘1000원짜리 상품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소요시간은 ‘약 5분’이라고 했다.
‘딥페이크 허위 조작 정보’에 넘어가지 말라는 ‘친절한 카톡’도 날아오고 있다. 그래도 ‘왕짜증’인 것은 마찬가지다.
조금 덜 생소한 듯한 전화번호가 뜨는 바람에 받으면 ‘음성 녹음’이다. “무슨 정당의 아무개 대표”라고 밝히고 있다. 또는 ‘여론조사’일 때도 있다.
‘수신 거부’를 해놓아도 다른 전화번호로 또 걸려오고 있다. 심지어는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고 있다.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의 문자가 엉뚱하게 날아오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유세차량은 동네 골목까지 누비면서 ‘한 표’를 강요하고 있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들리고 있다. 아마도 ‘불특정다수’가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