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독대’와 ‘윤대’

2024-04-29     문주영 편집위원
뉴스클레임DB

 

[뉴스클레임]  조선 초 성종 임금이 경회루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는데, 멀리 남산 쪽 정자에서 몇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성종이 따르던 수행원에게 지시했다.

저기서 술 마시는 사람 가운데 손순효 대감이 있는 것 같구나. 확인해보아라.”

잠시 후, 보고가 올라왔다.

손 대감님 맞습니다. 친구들과 탁주를 마시고 있는데, 안주는 오이 몇 쪽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성종이 다시 지시했다.

술과 안주를 보내되, 내가 보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말도록 당부해둬라.”

이튿날 아침, 손순효는 성종 앞에 나아가서 엎드렸다. “성은이 망극했다.

성종이 그런 손순효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나와 한잔하도록 합시다.”

성종은 이렇게 신하를 아꼈다. 사복을 입고 시내를 다니다가 쓸 만한 선비가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발탁하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는 호주가이기도 했다.

옛날에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신하를 만나 정사를 의론하고 대화를 나눴다. 이를 윤대(輪對)라고 했다. ‘은 바퀴라는 뜻이다. 관리들과 한꺼번에 만나면 대화하기가 어려워서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만난 것이다.

그 윤대에도 여러 가지 격식이 있었다.

차대(次對) = 관리들이 정기적으로 임금을 만나는 것.

소대(召對) = 임금이 특별히 관리를 불러서 만나는 것.

청대(請對) = 신하의 요청해서 만나주는 것.

연대(延對) = 임금이 학문을 연마하는 경연(經筵)에서 신하와 만나는 것.

성종이 그날 밤, 손순효를 만났다면 소대였을 것이다. 특별히 불렀기 때문이다. 또는 밤에 만나는 야대(夜對)’였다.

그리고 더 있었다. ‘독대(獨對)’. 임금이 신하와 단독으로 만나는 경우다. 오늘날 언론에 가끔 보도되면서 국민에게 익숙해진 용어다.

그러나 독대는 금지되어 있었다. 임금이 신하를 만날 때는 반드시 사관(史官)이 배석해서 대화 내용을 기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국정은 숨김없이 떳떳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 500년 동안 독대는 효종 임금이 송시열과 북벌을 논의한 기해 독대등 몇 차례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29영수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에 돌이켜보는 윤대의 과거사. “이 대표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윤 대통령의 뜻과 의제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신속히 만나겠다는 이 대표의 뜻에 따라 차담 회동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윤 대통령 취임 720일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의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기도 했다. 어렵게 성사된 것이다.

그래도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으로 그동안의 불통 이미지를 어느 정도 지울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국정 파트너로 공식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는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에게 이 되는 -윈 회담이라는 해석이다.

영수회담이 자주 이루어진다면, 국민은 정치판의 싸움질을 상대적으로 덜 볼 수 있어서 또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