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행] 이천리 해파랑길… 해파랑길13코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양포항에서 구룡포항까지 화려한 해변 길
[뉴스클레임]
11월 초에 걸은 해파랑길13코스는 포항시 양포항에서 구룡포항까지 바닷가를 거의 떠나지 않는 20여 km의 길이다. 이 길은 포항시가 운영하는 호미반도해안둘레길과 함께 간다.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거의 없지만 거리로 인해 한 번에 걷기는 쉽지 않은 코스다.
해파랑길 13코스가 시작되는 양포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고 1989년에 기본시설이 완공되었다. 2005년부터 다기능 어항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요트게류장 등 해양레저시설을 갖추어가고 있다. 아직은 대형 어선들이 많이 보이지만, 언젠가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레저와 스포츠 활동 중심의 항구로 탈바꿈할 듯하다. 공원과 주차장이 조성되고 그 배후엔 숙소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미 이틀 동안 14km 내외의 두 코스를 걷고 난 뒤여서 20여 km를 다 걸을 생각은 없었다. 구룡포를 향해 가다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택시를 불러 타고 숙소에 들 생각으로 양포항을 벗어났다.
바다를 메우며 길을 내다보니 오랜 세월 파도와 씨름하던 멋진 바위들이 육지로 올라앉았다. 그래도 그 위엄과 품위는 여전하다. 양포항에서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신창해변이다. 해수욕장이라고 할만한 해변은 아니어서 어촌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지만, 마을 입구의 퇴색된 벽화를 보며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민이 100여 명에 불과하고 이중 절반 정도가 어촌계원이라는데. 그나마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들이니 당연한 결과다. 대도시를 벗어난 어촌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거랑돌, 진돌, 큰바들, 오금방, 말방, 병풍선돌, 우는바위 그리고 옥샘바위 등 신창마을 주변의 바위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어느 바위가 거랑돌이고 우는바위가 어디 있는지 길을 걸으며 찾아다닐 수 없다. 다만 그 뜻과 어원을 누군가 기억하고, 그 돌에 얽힌 이야기가 잊히지 않고 전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을을 지났다.
해변을 돌아나가기 직전 두 갈래로 갈라진 상태에서 머리에 소나무를 키우고 있는 멋진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갈라진 틈 사이로 조금 전 걸어 나온 마을이 보였다. 산골짜기의 물을 모은 커다란 개울이 이 바위 근처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 보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 육당 최남선이 이 바위 위로 뜨는 해를 조선10경의 하나로 꼽았다는 장기일출암이다. 근처엔 멋진 바위가 더 있어서 예사롭게 여기며 지나가지 못하고 머물렀다.
걸어 나가며 마주친 해변은 그 어디가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었다. 발걸음 내디디며 마주하는 바닷가의 바위와 소나무와 그 너머로 펼쳐진 바다는 언젠가 다시 걸을 기약 없이 스치는 이를 붙들어 놓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사는 이들에게는 평범한 풍경이겠지만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이에게는 안타깝고 애틋한 아름다움이다.
바닷가에 물고기 양식장이 더러 보이고 가끔은 오징어 덕장과 과메기 덕장이 보인다. 구룡포항은 여전히 가깝지 않은데 아직 해가 중천에 있어서 더 걸어보기로 했다. 리본과 스티커가 바닷가를 벗어나 도로를 걷게 한다.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좋았다. 길 건너에 과메기 덕장이 보인다. 바람과 햇빛에 과메기가 마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마르며 기름방울이 맺힌 과메기를 바라보는데 주인인 듯한 이가 들어오라 손짓한다. 어차피 쉬고 싶은 마음도 있던 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과메기덕장을 운영하는 중년의 여사장이, 과메기 껍질을 벗겨,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쌈배추, 물미역, 김, 초고추장 등 순식간에 한 상 차려냈다. 덕장에서 바로 먹는 과메기는 맛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조금 굳은 젤리를 씹는 듯하고 생선 냄새가 전혀 없다.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사람이었는데 귀한 인연이 되었다. 걷다가 과메기 단골집이 생겼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