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 서서] 절망이란 절벽에 서서 바라보는 희망
희망과 절망 사이
[뉴스클레임]
희망이 있는 곳이거든요.
희망을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밝게 웃으면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그녀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 호숫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면, 소망이 이뤄진대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희망이라, 삶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람들은 더욱더 희망을 찾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절망에 이르는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희망한다. 사람들은 절망을 거부하기 위해 희망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절망에 빠져보지 않은 자들은 굳이 희망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절망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수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란 별칭을 듣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에는 수천 개의 호수가 존재하고 있고, 그중에서 이식쿨호수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톈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진 이식쿨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정호수였다. 호수 한가운데 깊은 수심에는 고대 도시가 잠들고 있다는 전설이 떠돌고 있었고, 이 호수는 사람들로부터 신령스러운 곳으로 숭배를 받고 있었다. 이곳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살아생전 한 번은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내일 당장 이식쿨 호수로 갈 거야.
사람들은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전날 밤, 취중에 객기를 부린 것으로 치부했다. 출장차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머물고 있던 나는 보드카에 많이 취해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렀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그렇게 그곳에 가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지 당시에는 나도 잘 몰랐다. 그날 오후 출발하는 비행기 표가 매진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도 출발을 강행했다. 또한 ‘아고다’ 앱이 자꾸 오류를 내는 바람에 비슈케크 현지에 도착해서야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비슈케크에서 이식쿨호수로 가는 길 역시 험난했다. 비슈케크에 도착한 그다음 날 기차역에 가보았지만 굳게 닫힌 기차 역사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기차는 휴가철에만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 이식쿨호수의 도시인 촐폰아타(Cholpon-Ata)행 티켓을 구했지만 버스는 제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떠날 줄 몰랐다. 아마 사람들을 꽉 채운 후 출발할 태세였다. 기겁할 일이었다.
러시아인 라자를 만난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이식쿨호수에 가는 길이었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합승 택시에 올라탔다.
라자의 가족은 전란을 피해서 빈손으로 모스크바를 급히 탈출했다. 40대 아버지가 징집대상자가 되어 체포위기에 처한 탓이었다. 가족이란 부모와 10대인 여동생이 전부였다. 더 큰 위기가 곧바로 찾아왔다. 피란처인 비슈케크에 도착한 부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라자가 생계와 병원비를 마련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21살의 어린 나이의 그녀가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짐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낯선 타국이지 않은가?
모스크바에서 디자이너 일을 했던 라자는 자신의 입맛대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평생 겪지 못했던 날 선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고통은 절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때 떠올린 것은 이식쿨호수였다.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받은 휴가가 이날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곳은 희망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식쿨호수에서 어떻게 희망을 얻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날 늦은 오후 시각에 촐폰아타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까스로 저렴한 숙소를 구했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휴양객이 떠난 숙소는 난방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숙소 방의 냉기에 못이긴 나는 숙소를 나와 호숫가로 향했다. 흐린 날씨로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호수의 모래밭에 주저앉아 동쪽을 향해 자리 잡았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천신인 ‘탱그리’에게 기도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기도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사위가 서서히 밝아지자 갑자기 내게도 희망이 절실해졌다. 희망이란 절망적 상황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영일지 모르지만 나는 밤새워 희망을 갈구했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솟아 놀랐다. 나는 희망이 수평선 같은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수평선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희망을 붙잡을 수는 없다. 희망은 대상적인 것들의 저편, 즉 수평선 건너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희망을 대상물로만 생각한다면, 모리스 마테르링크의 ‘파랑새’의 주인공처럼 행복 즉,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결국 아무 소득 없는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비슈케크로 돌아오는 길,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러스킨은 인생에는 두 가지 실망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희망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희망을 얻는 것, 단 두 가지 실망이 있을 뿐이다.”
깨달은 자의 ‘두 가지 실망’은 내게 화두로 곧바로 다가왔다. 그리고 덩달아 두 가지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물음은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귀국한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라자에 대한 안타깝지만, 현실적 질문이고, 또 하나는 나의 여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 물음은 다음과 같다.
라자는 이식쿨호수에서 정말 희망을 찾았을까?”
나는 왜 갑자기 이식쿨 호수로 가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