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구로, 다시 돌아보다
[뉴스클레임]
최근 구로 지역 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련한 기억이 많은 곳입니다. 1991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직장 폐쇄와 이전으로 많은 사업장이 ‘고용불안’에 시달렸는데요. 저는 ‘백산전자’와 ‘중원전자’ 그리고 ‘대한광학’ 등 고용 3사로 일컬어지는 사업장에 연대했지요.
그리고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백기완 선거운동본부’ 활동을 위해 구로 지역에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 '가리봉역'에 내려 사업장으로 걸어가던 무수한 노동자의 발걸음이 떠오릅니다.
'구로동맹' 파업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90년대 초중반까지도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가리봉 오거리까지 노동자와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진출하여 화염병 시위를 벌였고, 건물 옥상에서 유인물이 거리로 뿌려졌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라테’로 흘러가는데요. 특히 제가 근무했던 ‘범한 정기’는 꽤 오랫동안 장기 파업을 했지요. 구사대와 파업노동자가 맞붙어 싸웠어요. 이때 저는 아직 비정규직이었는데, 구사대가 던진 시계 틀인 '가다'에 눈언저리를 맞아 오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실려 갔지요. 지금도 자세히 보면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공단서점’ 주인장은 사회과학 서적과 팸플릿을 구비해 배포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유인물’과 사업장 소식지로 노동 현장의 동향을 받아 보았지요. 한마디로 공단 서점은 소식과 투쟁이 소통되던 ‘사랑방’이었습니다. 주인도 이로인해 옥고를 치렀습니다. 서점 뒤편 건물에 '노동인권회관'이 있었는데 국민의 힘으로 간 '김문수'와 부천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씨가 함께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동시상영 극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화를 보며 대기하거나, 만화방에 있다가 집회 시간에 맞춰 뛰쳐나와 거리로 진출했던 기억도 나네요. 맞다! DJ가 음악을 틀어주던 음악다방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가리봉 시장 근처 반지하 벌집에 지금 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성세경이 반달도서관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사회과학 서적을 옷장에 숨겨 놓고 몰래 보던 기억도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습득 죄'로 함부로 책도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구로 지역은 정말 많은 단체가 있었어요. ‘서울노동자회관’의 김혜진 그리고 '민중회의 구로지부' 김혜련 선배가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었고, 바로 옆 골목에‘서울 노동자학교’ 문순덕, 김창섭 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 종합학교'의 심재옥, '박영진 열사 추모사업회'의 대표와 정종권도 기억이 나네요. 유명을 달리한 오재영이 있었던 '서울 진보청년회' 그리고 '구로청년회'와 같은 건물을 사용했나 아무튼 '노동자문학회'에는 가장 나이가 많았던 오철수 시인을 축으로 조기조 시인, 송경동 시인, 황규관 시인이 있었습니다. 문화단체 등등 정말 많은 운동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리봉 시장 좌판에서 국수와 순대 등을 시켜 소주를 마시다 보면 옆자리에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합석하거나 노래방에서 놀던 기억도 있어요.
저는 2공단에 위치한 '시계제조업체 범한 정기'와 '볼펜제조업체 마이크로세라믹'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4년 8월 공안정국이 몰아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지요. 이때 지나간 이야기지만 사업장 현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자료를 안기부에 빼앗겨 현장에 있던 많은 학생 운동가가 저로 인해 뿔뿔이 떠난 서글픈 추억이 있지요. 이들은 나중에 한국통신과 지하철공사에 시험보고 재입사해 오히려 그때 그만두어 잘됐다 그럽니다. 현장 소모임 하던 ‘운영이, 재현이, 금순이, 선자와 국일(둘은 나중에 결혼) 창휘형과 형수, 형래형’ 등등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2013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요. 구로 '마리오아울렛' 앞 '노점상'을 단속하려고 쇼핑몰 측에서 지게차를 동원해 마차를 두들겨 부쉈지요. 이 과정에서 여성 노점상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과 가을 사이 또 구로 지역을 열심히 방문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10년 만에 동물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교회가 주최한 7월 ‘도시 모임’의 일환으로 구로 지역탐방에 참석했습니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가리봉 오거리 그리고 시장을 지나 구로역까지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길잡이'를 해 주신 분께서 이곳의 낙후된 부분과 값싼 외국인 노동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구로 지역은 가난한 이들의 거주 공간인 쪽방과 노동운동의 상징을 필사적으로 지우려는 듯 ‘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재편된 지 오래입니다. 과거 산업의 중추였던 금속, 기계, 전자, 섬유, 대신 그 자리는 첨단 IT 단지와 벤처기업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속내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시간에 허덕이는 젊은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계 중국인들이 국가와 민족, 이윤과 착취의 경계에서 착취당하는 존재로 상존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건물이나 사건 현장만 보고 다니는 것은 답사의 초보 단계라지요. 좀 더 그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다음 단계고요. 전혀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도시 속 내를 살피며 사람이 살아온 모습과 감춰진 과거를 발견해 내는 것이 답사의 목적일 것입니다. 이렇게 도시적 감수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일상적 삶의 공간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