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늪 빠진 청춘] ①혹시 '나비약'을 아시나요?
[뉴스클레임]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고 일컬어졌다. 이제는 '마약 천국'으로 불리고 있다. 마약사범은 폭증했고, 10대 청소년들까지 마약을 사고 판다. SNS에서 마약 판매를 암시하는 글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상대방을 직접 대면할 필요 없이 약속한 장소에 가서 마약을 집어가는 세상이다.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아도 마약을 끊지 못한다.
"이제는 유명하잖아요. '나비약'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요? 인기 연예인들 보면 진짜 날씬하잖아요. 얼굴도 작고, 다리는 길고, 심지어 남자 아이돌은 우리보다 더 얇아요.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요. 나도 저렇게 날씬하고 싶은데. 굶어도 보고 먹고 토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계가 있잖아요. 어느 순간 살이 안 빠져요. 그러면 다이어트약을 찾게 돼요. 아무 약을 먹는 건 아니에요. 효과가 좋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나비약을 먹었어요."
대학생이 된 A씨는 여름이 되기 전 살을 감량하는 게 목표였다. 여느 친구들처럼 예쁘고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시중에 판매되는 다이어트 약을 먹었다. 하지만 체중 감량 속도는 더뎠다. 결국 A씨는 듣기만 했던 다이어트약인 일명 '나비약'에 손을 댔다.
A씨가 먹은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펜터민 성분의 식욕억제제. 중추신경을 흥분시켜서 식욕을 사라지게 해 체중감량의 효과가 있다. 이 약은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돼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된다.
식약처는 안전사용기준을 마련해 BMI(체질량 지수) 30 이상의 고도비만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부작용은 심각했다. 어지럽고 양팔이 저린 것은 물론, 구토 증상이 찾아왔다.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감정기복도 심해졌다. 한번에 나비약을 많이 복용하는 날이면 검은 변을 보기도 했다. 스스로 몸과 정신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A씨는 병원을 찾아 처방전을 받고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비약'이 계속 생각난다는 A씨. 그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더라. 여러 부작용을 겪고 나니 약이 무서워졌지만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면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며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비약을 먹을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이 복용한다고 하면 말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이어트 약' 등 향정신성 약물을 접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에 중독된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부장 노만석 검사장)가 발간한 '2023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총 2만7611명이다. 2022년 1만8395명 대비 50.1% 증가한 수치다.
특히 1020 젊은 세대와 여성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여성 마약사범은 8910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검거된 4966명보다 무려 79%나 늘어난 것.
10대 마약사범은 지난해 1477명으로, 2022년 481명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20대 마약사범은 지난해 8368명으로, 2022년 5804명 대비 44.2% 증가했다.
대검은 "10대·여성 사범의 가담 비중이 늘고 마약류 중독 및 2차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며 "병의원의 무분별한 의료용 마약류 처방으로 온라인 환경에서의 불법 유통 범죄도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부작용을 알고 있음에도 '나비약'에 관대하다는 점이다. '나비약'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약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처방받으려고 병원을 문의하는 일도 적지 않다. 친구들끼리 약을 권하며 구매자에서 판매자로 진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가족보건협회는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3 마약류 범죄백서의 각종 통계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마약류 사범은 72%가 증가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3년에 8910명으로 2022년 대비 79.4%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투약 위주의 단순 마약사범에서 밀매, 밀수, 연락책 등 다변화하고 있으며,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국민 모두와 정부 관계자들이 마약 중독의 심각한 현실을 인식하고 마약 중독 예방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