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능청불능청’ 정치
[뉴스클레임]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한 아이의 귀에 난데없이 ‘앵’ 소리가 들렸다. 신기했다. 아이는 같이 놀던 친구에게 말했다.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앵’ 소리가 들려. 마치 피리 부는 소리 같아. 별처럼 둥그렇게 들리잖아.”
친구가 자기 귀를 아이의 귀에 맞댔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봐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무시하자,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남들이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글이다.
박지원은 ‘이명(耳鳴)’은 병(病)일 텐데도. 되레 남이 들어주지 못한다며 상대방을 딱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데에는 이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남의 주장을 읽어주지 않고 무시하려는 풍조를 비판한 것이다.
지금, 정치판이 ‘신조어(?)’ 비슷한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야당이 ‘특검법’을 잇따라 밀어붙이고, 여당이 ‘필리버스터’로 저지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이 생기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했다. 야당이 강행하는 ‘방송 4법’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 본회의의 사회를 거부하면서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다람쥐 쳇바퀴’였다.
서면 인터뷰에서 “방송을 자기 세력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공수를 바꿔가며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중재안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에 머무는 건 정치가 아니다”고 우려한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질소 정책’이었다.
지난달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놓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책 가운데 직접 지원은 고작 1조 원 남짓에 불과하다”며 “질소 과자처럼 과대포장된 ‘질소 정책’으로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민생경제가 비상 상황인데 비상시기에는 비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과 관련, “22대 국회 들어 2개월 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안만 일곱 번째”라며,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것과 야당이 오물탄핵을 하는 것이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단독처리한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을 국민의힘은 ‘13조 현금살포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같이 바보들의 행진, 다람쥐 쳇바퀴, 질소정책, 오물탄핵 등의 새로운 표현이 나오고 있지만, 박지원의 ‘앵’ 소리에 그치는 듯싶어지고 있다. 서로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정상적인 ‘청각’이라면 들리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능청불능청(能聽不能聽)’이라고 했다.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척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민생’마저 ‘능청불능청’하는 것은 곤란하다. 민생이 고달프다는 사실은 여도 야도 알고 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