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매국노 이완용이 ‘강제 합병’ 반대했다?

2024-08-28     문주영 편집위원
픽사베이

 

[뉴스클레임]  알다시피, 일제가 1905년 일제가 우리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을사늑약을 강요할 때 서명한 5명의 원흉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이다.

을사오적이완용은 ‘3·1 운동을 이렇게 깎아내렸다.

이번에 조선 독립운동이라 칭하여 경성 기타에서 행한 운동이라는 것은 사리(事理)를 불변(不辨)하고 국정(國情)을 알지 못하는 자의 경거망동으로 '내선동화'의 실()을 상해하는 것이라.”

이완용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내선동화의 실()을 상해코자 하는 자는 자기만을 위하려는가증스러운 무리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완용은 일본의 강제 병합을 반대했었다. 삼척동자도 매국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완용이 합병을 반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쉬웠다. 친일단체인 일진회한일연방국이니 합병론이니 하면서 선수를 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일진회의 송병준이 자기보다 먼저 합병론을 제기하자 우선 반대부터 한 것이다. 그래야 송병준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완용에게 자기가 내놓지 않는 합병론은 의미가 없었다. 그럴 경우, 일본의 호감을 살 수 없었을 게 뻔했다.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자기만을 위하려는것이라고 했지만, 이완용이 오히려 자기만을 위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가증스러운 무리가운데 하나였다. 이완용에게는 오로지 사리사욕뿐이었다.

'합병'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완용은 이재명 의사의 습격을 받고 온양온천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주위에서 은퇴를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데라우치가 총감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게 되었다. 이완용은 만사를 제쳐놓고 상경했다. 데라우치부터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완용은 데라우치가 '합병안'을 제시하자 그 자리에서 찬성했다. 어전회의를 소집해서 통과시켜버렸다. 고종 임금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알리는 등 싸우고 있는 가운데 처리된 강제 합병이었다.

이랬던 강제 합병이 합법적인 듯한 발언이 나오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일제 당시 선조들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주장했던 과거의 발언과 관련, “여전히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는 보도가 그렇다.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일제 당시의 국적이 한국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 후보자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따져볼 게 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점령했던 땅을 모두 포기했다. 중국과 동남아 등의 점령지역에서 쫓겨나고 전쟁 이전의 영토로 오그라들었다.

그러면서도 2000만 조선 사람들이 시쳇말로 천황폐하의 신민이라면 조선에서는 물러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8·15 광복도 없었을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될 수 있을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