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임톡] 돈방석 한강, 글 쓰는 고통
[뉴스클레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수입이 상금과 인세를 합쳐서 얼추 50억 원에 달할 전망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만 따질 일 아니다. 글을 쓰는 작업은 ‘고통’도 따르기 때문이다. ‘지봉유설’에 ‘글 쓰는 고통’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천자문’을 편찬해서 임금에게 바쳤는데, 하룻밤 사이에 수염과 머리털이 하얗게 변했다. 두 눈은 실명했고, 죽을 때는 마음이 단전을 떠난 것 같았다고 했다. 또,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눈썹이 모두 빠져버렸다. 명나라 때 위상(魏裳)은 초사(楚史) 76권을 저술하고 심혈이 모두 없어져서 죽고 말았다. 주먹으로 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봉유설’은 조선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편찬한 최초의 ‘문화 백과사전’이다. ‘25부 182장 3435항목’에 이르는 ‘대작(大作)’이다. 참고서적이 348가(家), 인용한 인명(人名)은 2265명이나 되는데, 모두 그 출처를 명시하고 있다. 이수광도 ‘글 쓰는 고통’이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송나라 문장가 동파 소식(蘇軾)이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친구가 물었다.
“이 글을 짓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나?”
소동파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까짓 것 일필휘지했지.”
하지만, 실제로는 고치고, 또 고치다가 구겨버린 종이가 ‘한 삼태기’였다고 했다. 어렵사리 만들어낸 작품이 ‘적벽부’였다.
‘엉클 톰스 캐빈’을 쓴 미국의 스토 부인에게는 하루에 수백 통이나 되는 공갈과 협박 편지가 날아 들어왔다. ‘흑인의 귀’를 잘라 넣은 소포가 배달되기도 했다. 노골적인 ‘살해 위협’이었다.
스토 부인은 그래서인지 자신이 ‘엉클 톰스 캐빈’을 짓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떤 독자가 찾아와서 “이 위대한 작품을 쓴 손을 내가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하고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쓴 것입니다. 나는 대필(代筆)을 했을 뿐입니다.”
한강도 지난주 글 쓰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한강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했다. 노벨상 작가도 글이 샘처럼 솟아나지는 않는 듯했다.
한강은 또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완성하는 시점을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곧 54세가 된다는 한강은 “작가들의 황금기를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았다”며 “앞으로 6년 동안은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3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앞으로 읽을 수 있는 한강의 작품은 아쉽게도 몇 권 남지 않았다.
한강뿐일 수 없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를 포함한 수많은 작가가 오늘도 ‘글 쓰는 고통’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