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다, 2년 전 진실… '무죄'와 맞서 싸우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뉴스클레임]
"밤부터 아침까지 전화벨이 내내 울렸어요. '너 괜찮아? 오늘 이태원 가서 논다고 했잖아. 너무 놀라서 연락했어. 전화 받아서 다행이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이게 무슨 일이래'. 전화를 끊고 나면 또다른 전화와 문자가 왔어요.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끄고 잠을 잤겠지만 이날만큼은 하나하나 답을 해줬어요. 그래야만 했던 날이었잖아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뚜렷하게 생각난다는 A씨. 만약 자신이 지하철역 화장실을 가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위험했을 거라고 말했다. 덤덤한 듯 들리지만 여전히 떨리는 A씨의 목소리. "미쳐 빠져나오지 못해 그 안에 30분 이상 갇힌 친구도 있었어요. 숨을 쉬려고, 살려고, 팔짱을 껴 공간을 확보했다고 하더라고요.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앞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A씨의 말대로 그날 그곳은 웃음과 행복 대신 '제발 무사하길', '살아서 돌아오길', '연락 한번만 닿아주길' 등 간절함으로 채워졌다. 날이 밝자 간절함은 절망과 오열로 바뀌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시민 158명이 사망했다. 이후 생존자 한 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희생자는 총 159명.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 든 유가족들은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다며 죽음의 이유를 묻고 다닌다. 그렇게 이태원 참사 2주기가 지났다.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무섭도록 숨겨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은 줄줄이 '무죄'를 받았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무죄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금고 3년의 실혐을 선고받았다.
반면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역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불기소 처리됐다.
A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저와 친구들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말도 안 되는 참사잖아요. 그런데 무죄라고 하니까 어이가 없고 몰래카메라를 찍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라고 울분을 통했다.
유가족들 역시 이태원 참사에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 없는 자세를 보며 자괴감만 든다고 탄식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다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 지역을 관할하는 지자체장과 서울경찰청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죄가 없다면 그 죄는 누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은 즐겁게 주말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며 "왜 여기를 찾아왔느냐, 여기를 왜 놀러왔느냐고 말을 하는, 그런 모욕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힘들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라며 "우리는 그날의 밤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문제가 있었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참사가 발생하고 2주기가 다가오는 동안 왜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변이 없었다. 이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묻고 또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부실한 수사로 참사의 책임자들이 죗값을 피해나가고 있는 것이 분노스럽다"며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책임을 규명하고 책임있는 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해, 분명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회피하기 바쁜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지금도 유가족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실'과 '안전'을 외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에선 '10·29 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 1심 판결 무엇을 밝혔고 무엇을 놓쳤는가?' 회의가 열렸다.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이태원 참사 사건 전후 개요와 판결 요지 및 시사점을 살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이태원 참사의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1심 판결과 관련해 "너무 놀랐다. 분명히 국가의 책임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되지 않을까라고 봤는데 협소하게 해석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이라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추은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 참사 TF 변호사는 “1심 판결에서 피고인의 주의의무나 감독책임을 ‘현저하게’ 해태하지 않았으므로 무죄라고 판단한 것은 법원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아니라 중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서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용산서장과 서울청장은 이태원 참사 위험성에 대해 유사한 수준의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상급 기관에 더 높은 수준의 예견 가능성이 요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참사의 책임은 ‘사법적 책임’에만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민애 민변 TF 변호사는 “형사책임을 묻지 못하면 참사 책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것처럼 인식돼서는 안 된다”면서 “도의적·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지는 것도 중요하다. 수사 과정뿐만 아니라 특조위 조사, 항소심 재판 등에서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