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 서서] 작화증과 푸네스의 기억

20여 년 만의 친구의 전화

2024-11-30     정보철 편집위원
사진=정보철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20여 년 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만을 퍼부었다. 장단을 맞추기는 했지만, 나는 친구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만 있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통화시간 내내 떠오르는 불쾌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아마도 내가 생생하게 떠올리는 불편한 장면들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여 년 만에 뜬금없이 걸려온 친근한 전화는 그에 대한 방증이다. 굳이 양보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는 장면을 그는 다정스러운 기억으로 둔갑시켜 놓을 수도 있다. 

나는 ‘푸네스의 기억’을 갖고 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모든 일을 정밀한 사진처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상대의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떠올린다. 선명한 기억력에 대해서 남들은 감탄하지만, 내게는 고통이었다. 한동안 타인들도 나처럼 상세한 기억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타인들의 기억은 ‘에고 선별적’이었다. 타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갖고 있었다. 

매일 아침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때로는 괴물이 되어 나를 덮친다. 매 순간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감정적으로 힘든 기억들도 함께 떠오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치고 혼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나는 아무리 오래된 일일지라도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분석하는 게 가능하다. 훗날 그들이 당시의 자신 의도를 숨길지라도 나는 단번에 찾아낸다. 

사소한 사건들, 이를테면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문제뿐만 아니라 타 대학교 1학년 국어시험문제 등도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드러난다. 이러한 사소한 장면과 이어지는 전후 사정이 한편의 스토리로 순식간에 만들어지면서 나를 압박한다.

앞에서 말한 친구의 경우도 그런 사례이다. 전화를 받는 내내, 그 친구가 나를 이용했던 일들이 하나의 시나리오로 연결돼 내 머리 위로 펼쳐졌다. 

타인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산다. 타인들이 사는 세상에는 ‘기억의 쓰레기장’이 있다. 불리한 기억, 불편한 기억은 쓰레기장에 버리면 된다. 분리수거 하듯이,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기억들을 버리고 또 버린다. 그래서 타인들에게는 과거의 시간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정작 사라져버린 타인의 기억을 떠올리며 매 순간 고통을 느낀다. 기억은 내가 방심할 때마다 나의 정신을 파고든다. 나는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장면 때문에 매일 정신적으로 지치고 혼란스럽다.

나의 선택은 술이었다. 술은 망각이다. 123, 내가 술에 의해 블랙아웃이 된 날들의 숫자이다. 하루하루씩 총 123일을 셈을 하고 나서 나는 군대에 갔다. 그러나 술에 의한 기억상실도 군대 생활 도중 곧바로 회복되었다. 저주받을 기억이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기억의 통제를 받는다. 문제는 기억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기억은 단지 창문이다. 나는 창문 뒤에서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창문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창틀이라고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창문과 창틀에 얽매여서는 나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기억이 되풀이 되는 세상이 펼쳐질 뿐이다. 

대중치료, 증상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기억의 문제도 대중치료가 필요했다. 기억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던 내게 그녀가 갑자기 등장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는 것은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화번호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수원에 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서울과는 지척 간 임에도 불구, 나는 대학 졸업 후 그녀를 만난 기억이 없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그녀를 떠올리려고 떠올릴수록 그녀는 점차 내게서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 시절에 유일한 대화상대였던 그녀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기괴한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대낮에는 그녀가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 그녀가 뚜렷이 생각났다. 

신촌 로터리의 2층 카페,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의 구석 자리가 우리가 만나는 장소였다. 시간은 항상 한밤중이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반짝거리는 두 눈과 빨간 입술뿐이다. 복학한 후 3, 4학년 대학 시절 내내 우리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런데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그녀와 나눈 이야기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의 얼굴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압도적인 기억력을 가진 내가, 대학 시절 유일한 대화상대였던 그녀와의 대화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비로소 찾아냈다. 작화증(作話症)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스스로 기억을 왜곡시켰다. 그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었다.

나는 왜 내 기억을 왜곡시켰을까 나는 또다시 불안감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에서 나의 기억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사실일까? 진짜 경험은 무엇일까? 그리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