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올해의 사자성어와 대통령
[뉴스클레임]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양기(梁冀)라는 관리가 있었다.
양기는 성격이 교활했다. 음주와 도박, 닭싸움이나 개싸움, 기마와 활쏘기 등 유흥을 특별히 즐겼다고 했다. 놀고먹는 데에만 빠진 사람이었다.
외모도 음흉했다. 승냥이 같은 눈은 늘 흉악한 빛으로 가득했고, 두 어깨는 얄팍하게 위로 치솟았다고 했다.
그래도 ‘대장군’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임금 순제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든든한 여동생 ‘끗발’로 출세한 것이다.
순제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자, 양기는 두 살배기 아기를 충제(沖帝)로 올리고, 순제의 아내인 여동생에게는 ‘수렴청정’을 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권력을 고스란히 장악할 수 있었다.
그 충제가 즉위 5개월 만에 죽자, 양기는 질제(質帝)를 새 임금으로 세웠다. 질제의 나이도 고작 8세에 불과했다. 권력은 여전히 양기 몫이었다.
하지만 질제는 총명했다. 어린 눈에도 양기의 전횡이 못마땅하게 보였다.
질제는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양기를 노려보면서 “이 사람은 ‘발호 장군’”이라고 비난했다.
그 ‘발호 장군’의 ‘발호(跋扈)’는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얘기다. ‘발’은 뛰어넘는다는 뜻이고, ‘호’는 대나무로 엮은 통발이다.
그러나 아무 물고기나 다 통발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이 약한 작은 물고기는 통발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도약력이 큰 물고기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발호는 대단치도 않은 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후한은 양기 같은 외척과 환관의 ‘발호’ 때문에 나라가 기울게 되었다. 백성은 여기에 정비례해서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跳梁)’에 ‘발호’를 합쳐서 ‘도량발호’라고 한 것이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3일 밤의 ‘비상계엄령’은 권력의 남용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나라꼴을 그대로 반영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닐 수 없다.
교수들은 또 올해의 사자성어 2위로 ‘후안무치(厚顔無恥)’를 꼽았다. ‘낯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3위는 ‘석서위려(碩鼠危旅)’다.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를 4위, ‘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을 5위로 각각 선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가 요란했던 2016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을 밝혔고, 결국 탄핵안이 가결된 상황을 빗댄 것이라는 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