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임톡] 을씨년스러운 지도자
[뉴스클레임] 뱀 꼬리는 언제나 머리의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꼬리는 그게 불만이었다. 자기도 앞장을 서보고 싶었다.
“나도 너처럼 몸의 한 부분인데, 왜 너는 항상 앞이고 나는 뒤만 말인가. 불공평하다. 나도 앞에서 가고 싶다.”
머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꼬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꼬리는 결국 꼬리였다. 꼬리가 앞장선다고 머리 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 꼬리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꼬리는 앞장서서 가다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자, 뒤에 있던 머리가 방법을 일러줬다. 꼬리는 머리 덕분에 구덩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꼬리는 계속 앞장서겠다고 우겼다. 그러다가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또 충고해준 덕분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뱀은 가시에 찔려서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꼬리는 그래도 앞장섰다. 그렇지만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다급해진 머리가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빠져나갈 재간은 없었다. 뱀은 불에 타죽고 말았다.
유대인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꼬리는 꼬리로 만족해야지 머리가 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뱀 이야기일 뿐일 수 없다. 군대에서 일등병의 실수는 대단치 않은 것일 수 있다. 일등병이 잘못하면 자기 혼자만 ‘전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휘관이 전황을 잘못 판단하면 야단날 수 있다. 자칫 부대가 전멸할 수도 있다.
기업도 말단 직원이 실수를 저지르면 약간의 손해에 그칠 수 있다. 공장에서 기능공이 실수로 불량품을 만들면 손해는 그 불량품에 국한될 수도 있다.
반면, 최고경영자가 판단을 잘못 내리면 기업 자체가 기우뚱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는 사업계획을 잘못 세우거나 상황을 오판하면 안 된다. 기업이 쓰러지거나 위기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더욱 그렇다. 정책이 삐딱해지면 나라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국민이 고통받을 수 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우려를 그대로 옮기면 “국가 비상상황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경제와 민생”이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다. 120년 전 을사년에는 이른바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겼던 쓰라린 과거사가 있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후 곧바로 ‘통감부 및 이사청관제’를 공표, 내정까지 ‘통감(統監)’이 장악하도록 했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지휘권도 통감이 담당하도록 했다. 정치, 경제는 물론 군사까지 죄다 강탈한 것이다. 단지 합병절차만 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라가 이 모양이 되자 사람들은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쓸쓸하면 ‘을사년스럽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을씨년스럽다’고 가끔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조직 전체를 망칠 수 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가 더욱 어지러워진 가운데 맞는 새해다. ‘트럼프 리스크’에 빗대서 ‘윤석열 리스크’라는 말까지 생기고 있을 정도다. 을사년에 돌이켜보는 뱀 꼬리와 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