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대통령의 ‘감동 편지, 선동 편지’ 

2025-01-07     문주영 편집위원
플리커

 

[뉴스클레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대통령이 오래된 편지 한 장을 공개했다. ‘선배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가 15년 전에 써놓은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편지 겉봉에는 ‘미래의 대통령 귀하’라고 적혀 있었다.
루스벨트는 15년 뒤에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물론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수신자를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이 오래된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1956년이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코린 켈리 대위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를 희망한다면 각하의 따뜻한 배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루스벨트 올림.”
루스벨트가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 있었다.
1941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했다. 이어 괌까지 빼앗았다.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전의마저 상실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전보 하나가 날아왔다. 코린 켈리 대위가 일본 최대의 전함을 격침시킨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승전보였다.
미국은 이 승전보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순국한 코린 켈리 대위의 ‘미망인’과 2살 된 아들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기도 했다.
루스벨트의 편지는 이 ‘순국 영웅’인 코린 켈리의 ‘2세’를 위한 것이었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편지였다. 편지가 공개되자 미국 국민은 감격했다. “감격의 절정을 이뤘다”고 했다.
청년으로 성장한 코린 켈리 2세는 아버지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의 축복을 받으며 웨스트포인트에 당당하게 입학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의 편지는 멋이 있었다. 온 국민을 ‘감동 먹게’ 만들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2025년 새해 벽두에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연하장 아닌 편지를 쓰고 있다. 
‘미래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에게 쓴 편지다. 
편지에서 윤 대통령은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감동 먹은’ 심정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나라 안팎의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국가나 당이 주인이 아니라 국민 한 분 한 분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우리 더 힘을 내자”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편지는 루스벨트의 편지와 좀 달랐다. 루스벨트의 편지는 ‘감동 편지’였지만, 윤 대통령의 편지는 마치 ‘선동 편지’처럼 보였다. 루스벨트의 편지는 국민을 ‘단합’하도록 만들었지만, 윤 대통령의 편지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애국시민 여러분’의 단합만 호소하는 것 같았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괴뢰 한국은 정치적 기능이 마비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고 보도하면서 윤 대통령의 편지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도 보도했을 것이다. 
그 반응은 ‘글쎄’인 듯싶었다.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당의 공식적 입장을 낼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을 정도다. 조용할 날 없는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