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흑묘백묘 앞 쥐
[뉴스클레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흑묘백묘론’을 또 강조했다.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며, 민생을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진보정책이든, 보수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해서 유용하다면 어떤 정책도 수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포함,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 비전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도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겠는가. 탈이념·탈진영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했다.
알다시피, ‘흑묘백묘론(黑貓白貓論)’은 중국 지도자 등소평(鄧小平)의 경제정책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인터넷 사전’을 옮기면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던 등소평이 펼친 경제정책.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정책”이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을 이 대표가 종종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흑묘백묘론’은 등소평의 ‘독창적인 게 아니었다. 원래는 ‘흑묘황묘론’이었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가 아니라, ‘검은 고양이 노랑 고양이’였다는 것이다.
이 ‘흑묘황묘론’을 등소평의 전우인 유백승(劉伯承)이 작전계획을 짤 때 즐겨 써먹었는데, 등소평도 나중에 경제에 적용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당시 실력자 주은래(周恩來)가 쓰촨성 지방의 격언인 ‘흑묘황묘’를 인용한 것을 등소평이 다시 인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까 흑묘백묘론의 ‘원조’는 따로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등소평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이 ‘흑묘백묘론’을 주장한다면 어떨까.
우선 ‘원조 논쟁’에 휩싸일 수 있다. ‘남의 논리’를 끌어다가 ‘재탕’한다는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흑묘백묘’라는 논리 자체가 쑥 들어가 버릴 수도 있다.
고양이의 ‘자격’ 또는 ‘자질’을 따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서 “검든 희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권 위원장은 “민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놓았던 흑묘백묘론까지 끄집어냈다”고 꼬집고 있었다. 민주당 이원혁 부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쥐 잡는 고양이도 국적을 따지나”며 “유치한 말장난”이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대권 잠룡’이라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쥐가 사라지고 고양이만 남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며 “쥐를 제대로 쫓아가서 잡아야 할 것”이라고 이 대표를 경계하기도 했다.
이렇게 논쟁으로 시간을 잃으면 ‘골든타임’은 물 건너갈 수 있다. 그러면 흑묘백묘론은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소멸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우외환’이다. 안으로는 ‘탄핵정국’이고, 밖으로는 언론이 발작이라고 번역한 ‘트럼프 탠트럼’이다. 전 세계를 향해서 관세 폭탄을 내던지는 탠트럼이다. 흑묘백묘 다투다가 고양이 앞 쥐가 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