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잉어가 붕어를 알까?
[뉴스클레임] 장자(莊子)는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듯 했다. 어느 날 허기를 견디지 못해 친구를 찾아갔다. 관청에서 공무원을 하는 친구였다. 몇 끼니 먹을 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친구는 ‘오리발’이었다.
“며칠 후 세금이 걷히면 300금 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리게.”
보태줄 마음이 전혀 없는 대답이었다. 열 받은 장자는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자네에게 돈을 꾸러 오는데, 길바닥에 난 수레바퀴 자국에 물이 고여 있더군. 그 물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지. 붕어가 나에게 물이 조금밖에 없어서 숨이 차다며 좀 부어달라고 사정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지금 월나라로 가는 길이니 돌아오는 길에 물을 잔뜩 부어주겠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붕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나는 물이 조금만 있어도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물을 부어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마도 생선가게에 매달려 있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아무리 물이 많아도 필요 없어요.”
‘철부지급(轍鮒之急)’의 고사다. 말라 죽어가는 붕어에게는 나중에 부어주는 한 바가지의 물보다, 당장 한 방울의 물이 더 시급할 수밖에 없다.
장자의 ‘물고기 이야기’는 더 있다.
장자가 길을 가다가 말라비틀어진 연못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붕어 두 마리가 배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곧 죽겠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다음날 지나가면서 보니 두 마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서로 거품을 내서 상대의 몸을 적셔주며 버틴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상유이말(相濡以沫)’이다. ‘거품으로 서로를 적셔준다’는 뜻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힘으로 남을 돕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거품이 오래 남아 있을 가능성은 아마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잉어 이야기’도 있다.
황하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급류가 있다. 잉어가 이곳을 거슬러 올라가면 순식간에 ‘환골탈태’해서 용(龍)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곳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도 “한 번 용문에 오르면 그 성가가 10배에 이르게 된다”고 읊은 바 있다.
지금 용이 되고 싶은 잉어들이 이 급류에 모이고 있다. 어떤 잉어는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어떤 잉어는 책을 펴내고 있다. 어떤 잉어는 당연한 도전이라며 달려들고 있다. 이렇게 용문을 찾는 잉어들에게는 ‘잠룡(潛龍)’이라는 그럴듯한 ‘별명’이 붙고 있다. 조만간 용이 될 가능성 있는 잠룡이다.
그런데 용문의 물살은 만만치 않다. 너무 빠르고 세다. 잉어는 그 물살을 돌파하지 못하고 대부분은 밑에서 맴돌기 일쑤다.
그러면서 잉어끼리 경쟁을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앞서서 물살을 가르는 ‘경쟁 잉어’의 비늘 한 개에라도 ‘흠집’을 내려고 헐뜯고 다투고 있다.
그런 사투 끝에 용문을 통과해서 용으로 등극할 수 있는 잉어는 ‘1등 잉어’뿐이다. 나머지는 ‘잠룡’ 체면을 구기고 그냥 잉어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잉어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용문’뿐이다. 먼저 오르려고 기세 싸움이다. 그 싸움이 앞당겨질 전망이라고 한다. ‘조기 대선’이다. ‘현직 용’은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붕어는 구차해지고 있다. ‘삶의 만족도’가 38개 웅덩이에 있는 붕어 중에서 33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