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책 한 권, ‘불온한 공익’

2025-03-06     최인기 빈민운동가
류하경 변호사 ‘불온한 공익’

[뉴스클레임]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주변 정리가 필요했다. 머릿 속이 복잡하면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류하경 변호사는 그의 책 ‘불온한 공익’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란,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넓혀 가야 한다며 그 허용 기준에 대해 밝힌다.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따르면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라고 이 책은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저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 내는지 그리고 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려는 거 같다.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밥부터 챙겨 먹고, 집 안 청소하고, 샤워까지 마쳤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장 ‘공룡과의 싸움’ 편. 그런데 처음부터 내용이 심상치 않다. 변론이 직업인 사람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재판을 받다니. 저자가 변호사 1년 차에 벌어진 사건이란다. 다름 아닌 2013년 7월에 있었던 서울 시청 근처 대한문 앞 쌍룡자동차 노동자 집회를 둘러싼 내용으로 이때 기소된 변호사는 총 여섯 명이었다. 대법원 선고까지 6년 그리고 민사법원까지 다시 10년이 걸려 재판은 끝났다. 결론은 집회 장소를 점거하고 폴리스라인을 설정한 경찰의 행위는 위법이라고 판결되었다. “집회의 자유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공권력의 본질은 ‘공인된 폭력’이라고 한다.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지 않게 행사한다면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돌변한다고. 따라서 폭력을 길들이는 이성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헌법’과 ‘법률’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인된 물리력도 없고, 사회 경제적으로 유력한 수단도 없는 힘없는 시민들이 못 살겠다고, 죽겠다고, 억압당하고 착취당해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낄 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거리로 나와야 한단다. 이 대목에서 최근 한국 사회의 현실이 교차 된다. ‘윤석열 정권의 계엄’ 말이다. 이 책은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한 달 전 출간 되었는데, 구조적 억압을 이겨내는 수단이야 말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서는 권리를 지켜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로 노점상 철거민에 대한 이야기. 철거 주체인 구청들은 행정대집행법상 강제철거가 필요성이 크지 않고 다른 대안이 있는데도 즉시 철거를 강행했고, 핵심 절차들을 상당히 위배했으며, 철거 과정에서 목적 달성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노점상들은 모두 ‘특수공무집행방해’ 죄로 처벌받았다. 형법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공무집행에 저항하는 행위를 ‘정당행위’, ‘정당방위’라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당시 구청 공무원, 용역깡패들은 누구도 조사받거나 기소되지 않았다. 저자는 법대로 하자면 공무원들과 용역깡패들은 특수폭행죄, 특수 상해죄, 재물손괴죄, 절도죄, 직권남용죄의 공모공동정범이고 철거민과 노점상들은 폭행 사실은 인정되나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행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판결은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의 노점상이 1년 6월과 이에 준하는 형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현실이랄까

키우던 강아지 ‘로마’를 둘러싼 소송은 유쾌하다. 최초의 ‘공동명의 동물 등록 사례’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위성정당 문제를 둘러싼 심각성에 대해서도 한때 함께 일했을 법한 인권변호사였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리고 위성정당에 대해 여러 가지로 조목조목 공들여 서술해 놓았다.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다음은 제2장 ‘무엇이 공익인가’에 등장하는 장위동 철거민 사례다. 부제는 ‘불온한 사익 투쟁들의 이면’이다. 대부분의 재개발 전문 법무법인은 재개발 조합과 사업자 대리만 하지, 철거민 대리 전문 변호사는 전무 하다. 이런 상황에서 철거민 대표자가 자기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철거 현장으로 달려간다. 수십 년 거주한 단독 주택에서 쫓겨나고 철거당하고 감언이설로 속아 보상 또는 새 주택을 받지 못한 원주민을 변론한다. 그리고 2년간의 민사소송 끝에 대법원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고 마침내 철거민의 손을 들어준다. 그 과정이 흥미롭지만, 하지만 여전히 이사회의 주거 문제와 강제 철거를 둘러싼 문제는 남는다. 

오래전 언론에 소개되어 대서특필되었던 ‘경비원을 머슴으로 여기며 욕하고 때리고 망신 주어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먼저 죽었고 이를 원인으로 신체가 따라 죽은 사건으로 저자는 생각한다. ‘갑질’은 영혼의 살인사건이라 규정하고 대응에 나선다. 경비원은 노동자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게 되고, 근로계약이나 법률상 규정된 업무 외의 각종 일을 해야만 한다. 자칫 입주민 눈에 어긋나면 바로 계약 해지 방식으로 해고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실체가 드러나고 시선을 끌게 된다.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도 만들어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전의 경비 노동자 갑질 피해 사건들도 다시 주목받아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으로 이어진다.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 학교를 상대로 쟁의 행위를 하게 된 청소노동자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벌어진 사건. 노조는 합법적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내걸고 쟁의 행위를 했다. 그런데 학생 세 명이 이들을 상대로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 고발과 민사손해배상청구’ 까지 한다. 소음이 수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결론은 제삼자의 불편함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요지로 학생들의 고소 고발과 민사 손해배상청구 모두 무혐의 처분되거나 기각되었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학생과 청소노동자는 대립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불편함의 품앗이’라는 말로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고, 사용자인 학교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사건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메탄올 실명 사건, 산재 문제, 불법 파견문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만들기, 특히 삼성의 무노조 76년에 마침표를 찍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등등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그려 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 “이혼하기 어려운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이혼하기 쉬운 나라가 행복한 나라라고….”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라 공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사익 투쟁기’로 책은 마무리한다. 의뢰인과 함께 기나긴 재판과 소송을 준비하며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회적 약자들의 각개전투가 반복되고 결국 이들은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는 패배한다고 말한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싸워본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대부분 주저앉거나 회피하고 만다. 하지만 저자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시간들이 모여서 큰 그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거 같다. 

이밖에도 재밌는 글들이 많다.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는다. 속내가 잘 들어 난 글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에 부합하는 글로 읽힌다. 이밖에도 ‘검경 수사권 조정 그 이후’ 의 이야기 특히 사건이 ‘불 송치’ 되는 과정은 모두들 눈여겨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실무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참고할 만한 내용도 많다.

의뢰인은 대부분 재판 결과에 대해 집착할 뿐 정작 함께 싸워준 변호인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과할 때가 많다. 그럴 여유가 없거나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언급한 노점상 단체의 항소심 선고가 있던 날 나는 재판을 받는 피의자의 신분으로 법정에 류하경 변호사와 함께했다. 변론을 준비하는 내내 그의 꼼꼼함과 치열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직감적으로 사건이 유리하게 판결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 대로였다. 들어오는 문은 같았지만, 나가는 문은 달랐다. 면회 온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재판이 끝난 후 동료들과 함께 변호인이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그후 변호인 접견을 통해 다시 만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며 서로를 칭찬했던 기억이 있다. 나 또는 우리는 그에게 진 빚이 많다. 법정에서 노점상과 철거민의 목소리를 논리적으로 잘 대변해 주었고 무엇보다 탄압받는 이들과 함께했던 그였다. 이 책 ‘불온한 공익’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변호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변호할 때 갖는 실존적 순간과 여러 고민이 행간에 드러나 있어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던진 ‘화쟁和諍’ 이라는 화두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공익’ 이라는 표현에 알맹이를 넣는다면 바로 이런 평화, 이런 화해가 아닐까. 라고 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