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테마주와 정치판
[뉴스클레임] 1980년대 후반 ‘6·29 민주화 선언’ 당시 증권시장에서는 주식값이 엄청나게 치솟았다. 거래대금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루 주식거래대금이 처음으로 ‘조’를 넘기도 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증시 주변에서는 이를 ‘민주화 장세’라고 불렀다. ‘민주화 주가’라고도 했다. 그 표현처럼, 증권시장은 정치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식값이 치솟을 만한 경제 상황이 아니었다. 상장기업의 영업실적이 별안간 좋아진 것도 아니었고, 뚜렷하게 좋아질 전망도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화’가 되면 주식값이 떨어질 수 있었다. ‘민주화’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특혜가 줄어들고, 임금 인상 요구가 높아지는 등 노사관계도 간단치 않을 여건이었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을 나쁘게 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민주화’는 주식값에는 ‘악재’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도 증시에 돈이 몰려들고 주가는 치솟았다. 이를테면, 증시에 상장된 종목 대부분이 ‘정치 테마주’였던 셈이었다.
그런 결과는 주식값의 폭락 사태였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주가를 떠받쳐야 했다. 1989년의 ‘12·12 조치’였다. 증권시장이 정치 바람을 타면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 테마주가 등장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테마주’, ‘한동훈 테마주’ 등이 부상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우는 출마를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덕수 테마주’다.
주식값은 기업의 가치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가치와 무관하게 정치인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심지어는 “특정 정치인과 무관하다”고 해명해도 가격이 급변하고 있다. 풍문과 투기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도 이른바 ‘작전 세력’의 개입으로 실제보다 부풀려진 경우가 많아 선의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작년 12월부터 이달 18일까지 ‘투자경고’ 이상으로 지정된 115개 종목 가운데 52%인 60개 종목이 정치 테마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달 들어서는 37개 중에서 78%인 29개 종목이 정치 테마주로, 과열 양상이 심화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치 테마주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민주화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의 생업이나 기업 경영과는 무관해야 정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통령이 바뀌면 측근이 득세하고 있다. 친인척의 기세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은 정권에 잘 보이면 승승장구하고, 밉보이면 고생하는 수도 있었다. 과거 군사정권 때에는 ‘공중분해’된 그룹도 있었다. 그런 기업과 친인척 관계, 또는 동창 관계인 기업의 주가도 따라서 널뛰기를 하는 사례도 많았다. 그런 경우를 국민은 많이 보아 왔다.
예측할 수 없는 정치는 국민과 기업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바람에 테마주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후진적인 정치가 증권시장까지 어지럽히는 셈이다.
증권 당국은 이번 대선 기간에도 정치 테마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불공정거래 행위가 포착되면 강력하게 대처할 계획이라도 했다. 그런다고 테마주가 사라질 리는 없다. 정치판이 달라져야 테마주도 움츠러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