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칼럼] 착하다는 것이 욕이 된 세상에서
[뉴스클레임]
내 어머니가 사위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 '저 가시나 착하다'였다. 왜 일까? 어머니께 나는 너무 모진 딸이었다. 술을 먹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끔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딸에게 너는 니 아버지 술 지겹지도 않아서 그러냐는 말씀을 하시면, 아버지의 삶이 내게로 내려와서 그런다며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 지독한 딸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저 가시나 착하다, 니 어른들도 금방 알끼다…' 말했다. 다른 건 니한테 내세울 게 없다..라는 혼잣말도 함께.
내 꿈은 어릴 적부터 딱 남들만큼 사는 거...였다. 그런데 그 꿈은 툭하며 샛길이고 나는 혼자였다. 열두 살이 되어 다시 본 어머니는 남의 집 식모였다. 그 집 손자를 등에 업고 일하면서, 지 새끼 밥 한끼 차려 주면서도 세상에 계속 머리를 숙였다 했다.
미안해서 우짭니꺼…미안합니다… 금방 보내끼에…
그 순간의 창피함, 그 순간의 모멸감,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슬픔....순식간에 나의 몸이 옮겨져, 제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식탁에 앉아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어머니의 힘을, 세상은 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시간 동안 나를 떼어냈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원망한 것에 대한 사죄였다.
나는 기를 쓰고 맛있게 먹었다…. 내 배가 무거워지는 속도로 어머니의 비굴했던 표정이 가벼워졌다. 내가 기를 쓰고 맛있게 먹을수록 어머니 얼굴이 행복해졌다. 어머니께 내 배가 절박함과 수치를 견디는 힘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는 견뎌도 상처를 주는 일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가 없는 가난한 어미와 딸이었다.
'저 가시나 착하다…'
착하다는 것이 욕이 된 세상에 어머니는 남편에게 그것밖에 내세울 게 없다…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