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와 노점상 6.13대회
38차 노점상대회 13일 서울 시청 앞에서 개최.
[뉴스클레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노점상들은 바빠진다. 장사하는 일 말고 손수레나 주변에 포스터를 붙이고, 현수막을 거는 등 또 다른 일로 분주해진다. 무슨 일 벌어졌나? ‘단속이 있나 보다 그리고 집회를 준비 하나보다’ 하겠지만 일 년 365일 가운데 그들에게 중요한 행사가 있다. 바로 6.13 대회다.
얼마 전 종영된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한 장면은 이들의 눈물겨운 서사를 잘 보여준다.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점상을 하는 상인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춘다. 그리고 여지없이 좌판을 걷어차고 짓밟는 ‘구청직원과 학씨’ 의 모습이 등장한다. 길거리에 뒹구는 채소와 생선들 그리고 울부짖는 상인의 모습은 단순히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살고자 거리에 나온 삶의 현장은 이처럼 고통스럽고 비루했다. 얼마나 퍽퍽하고 야속했을까? 하지만 짓밟으면 그대로 주저앉지만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두 주먹 불끈 쥐었고, 생존권 쟁취가 적힌 붉은띠를 머리에 두르고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섰다. 그날이 6월 13일이다.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 군부독재는 광주에서 학살로 얻은 피의 정권임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국제행사를 자주 개최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국민의 관심을 돌려야 하니까. 그럴 때마다 가난한 이들은 고달팠다. 거리는 외국인에게 보여 주기 위해 말끔히 정리되어야 하기에 ‘노점상들은 싹 쓸어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순순히 물러날 정권이 아니었다. 전투경찰은 ‘최루탄’을 쏴대며 행진을 가로막고 백골단의 폭력으로 모두 17명의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노점상들은 ‘단결’ 했다. 다시 성균관 대학교로 들어가 대오를 정비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하기를 16일까지 멈추지 않았다. 잠잠했던 언론도 노점상이 올림픽 기간 단속에 맞서 생존권을 걸고 싸운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누군가 주먹밥을 만들어 날랐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생들과 시민들도 함께 밤을 새우며 싸웠다. 어떤 노점상은 이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일도 아닌데 함께 싸우는 것을 보고 ‘연대’ 라는 단어를 배웠다고 말한다.
전두환 정권은 놀랐다. 전국적으로 학생과 시민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저항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제 노점상과 철거민과 도시빈민이라니. 급기야 대대적인 단속을 유보했다. 손수레 보관소 폐쇄 계획을 보류했다. “마침내 전두환 정권이 백기를 들었다”고 노점상은 외쳤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을 통해 생애 최초로 커다란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이날의 싸움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실체를 개별적인 나약한 존재에서 한걸음 나아가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긴 것이다. 나라가 바로서야 민중들의 삶이 보장되고 사회가 밝아 질 수 있다는 ‘각성’ 하게 되었다.
이날을 계승하며 38차 노점상 대회를 13일 서울 시청 앞에서 개최하게 된다. 수많은 노점상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달라졌는지. 이 대회를 준비 중인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광장의 시민과 항쟁으로 승리한 우리는 내란 세력 완전 청산과 사회 대개혁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작년 12월 3일 무도하고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자, 노점상들은 윤석열을 탄핵하는 데 주저 없이 나섰다. 단식과 농성, 집회 시위로 광장을 지키며 싸웠다. 그러는 중에도 내란 세력과 함께하는 지자체들이 노점상의 생계를 짓밟았다. 먹고 살고자 거리에 나선 사람을 상대로 상상 초월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손수레를 뒤엎고 인권을 짓밟으며 단속을 진행했다. 바뀌지 않은 노점상의 현실과 민낮이다.
우리나라 법 어느 구석에도 노점상을 직접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특별사법 경찰제도’를 도입해 범죄시하고 있다. ‘노점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유포하지만 내고 싶어도 ‘소득세법 시행령 제311조’,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57조’, ‘지방세법 시행령 제79조’에 따르면 면세 대상이다. 실제 한 노점상이 세금을 내겠다고 문을 두드렸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특정 업종과 연소득이 낮은 다수의 상행위 종사자’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점상은 여전히 서글프다. 사회적 편견이 그렇고 아무렇지 않게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현실 때문에 그렇다. 이번 38차 6.13 전국노점상대회는 오래전 “노점상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인간다운 권리를 요구하며 떨쳐나섰던 그 정신을 계승해 나갈 것이다. 내란의 완전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위한 범국민적 투쟁을 세상에 선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여태껏 그랬듯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 등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처럼 거리에서 울부짖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기에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듯이 2025년 노점상 대회를 통해 우리 사회 진보와 개혁을 앞당기는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진보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