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의 문학칼럼] 그리움만 쌓이네!
[뉴스클레임]
시인 민영 선생을 떠올리면 조부 생각이 난다. 민영 선생은 나의 선친보다도 되레 네댓 살 아래이지만 선생을 처음 뵈었을 때 두루마기 차림이어서 그랬는지, 단아한 체구며 나직나직한 말투 때문에 그랬는지, 내 어릴 때 돌아가신 조부를 떠올리기에 ‘딱’이었다.
조부는 내게 조선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었다. 두루마기, 조끼, 동정, 대님 등의 옷차림에, 장손인 내게 베푼 훈육의 방식과, 삼베 적삼에서 나는 땀 냄새 모두 마지막 조선인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삼십오륙 전에 민영 선생을 처음 뵈올 때 나는 순간 아찔했다. 조부가 잠깐 손자를 보러 오신 줄 알았으니까...
시인 민영 선생이 이승을 떠나셨다.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찾아뵈어야지 했지만 최근 십년 넘게 찾아가 뵙지 못했다. 어른들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어리석은 중생은 벼르고 벼르며 자꾸만 때를 놓친다...
지난 90년대 초 출판사 한길사에서 새로운 판형으로 시집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민영 선생의 시집 ‘바람 부는 날’과 김규동 선생의 시집 ‘생명의 노래’ 시리즈에 필자의 첫 시집 ‘진도아리랑’이 같이 나왔다.
덕분에 민영 선생과 김규동 선생을 그 무렵 자연스레 뵈었다. 민영 선생보다 열 살 정도 위이신 김규동 선생은 그때 시집의 저자 기증본을 가져가기 위해 며느리의 빨간 소형차를 손수 몰고 오셔서 젊은 우리를 놀라게 하셨다.
택배가 없던 시절이라 젊은 사람들은 기증본을 보자기에 싸거나 가방에 넣어 직접 가져가야 했다. 나는 까만 가방에 시집을 쑤셔 넣어가지고 전철을 탔다. 근데 우리와 달리, 가장 노인(?)인 김규동 선생이 빨간 차를 운전하고 오시다니...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김규동 선생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으셨다!
김규동 선생 가신 지는 거의 15년쯤 된다. 민영 선생과 한 묶음(?)으로 그리운 분. 민영 선생님 거기 가시면 김규동 선생님과 그간 못 나눈 얘기 조곤조곤 나누시겠지요.
두 분 다 그립다. 어떤 노랫말처럼 ‘그리움만 쌓이네’이다. 민영 선생님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