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 ‘아랫마을’ 가는 길이에요"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다섯 개의 反빈곤운동 단체

2025-06-23     최인기 빈민운동가

[뉴스클레임]

아랫마을 전경. 사진=최인기

그러니까 4호선 출구에서 남영동 방향으로 걷다 보면 청파동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만날 수 있죠. 길이가 100m쯤 되려나 3층짜리 낡은 건물이 보이고요. 그 옆으로 1호선 전철이 다닙니다. 이 근처는 철공소가 밀집한 흔적이 남아있어요. 아주 오래전에는 개천이 흘러 새우젓과 소금을 남대문역 근처 칠패시장까지 실어 날랐다더군요. 그런데 척 보면 짐작할 수 있죠. 1층 벽면에 포스터가 붙어있고 입구 아래 작은 글씨로 아랫마을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어요.

아랫마을. 사진=최인기

뭐 하는 곳이냐고요?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다섯 개의 빈곤운동 단체가 옹기종기 모여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랍니다. 아랫마을 그리고 둥지 뭐 이런 단어는 참 서정적이죠? 사람들도 활짝 웃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할 거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등장하는 사람들 이들을 '활동가'라 부릅니다. 그런데 뭔가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씨름을 하고 있어요.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지쳐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아랫마을의 사무실. 사진=최인기

안녕들 하십니까그러자 다들 큰 목소리로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맞이하지만, 이내 곧 자신들의 컴퓨터 속으로 사라집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집회와 기자회견 무슨 무슨 행사를 하면 꼭 보는 사이라 솔직히 특별히 반가울 게 없지요. ㅎㅎㅎ

이들이 365일 모여 하는 일은 반빈곤연대활동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관심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주거 문제나 채무 그리고 복지 등의 상담은 기본이고요. ‘빈곤 철폐의 날주거의 날그리고 홈리스추모제등이 이곳에서 기획되고 행동으로 옮겨지죠. 그렇다고 소위 활동가들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단순히 시혜적으로 누군가는 주고 누구는 수동적으로 받는 곳이 절대 아니지요.

아랫마을과 홈리스야학. 사진=최인기

아랫마을은 활동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꾸려나갑니다. 오랫동안 해온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얼마 전부터 수급자 모임을 하며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활발히 벌이고 있지요. 거리 홈리스와 함께 인권지킴이,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의 활동 등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실천을 하는 곳입니다.

아랫마을 강당. 사진=최인기

아랫마을은 6미터 11미터로 약 66 제곱미터 가량의 강당이 있어요. 큰 행사가 있으면 하나로 사용하지만 배움터인 홈리스 야학을 하기 위해서는 반으로 잘라 두 개의 강의실로 사용하죠. “가난으로 인해 학령기 때 공부할 기회를 놓치거나, 거리, 노숙인시설, 고시원, 쪽방 등지에서 살고 있는 홈리스 및 사회에 대한 이해나 문화 활동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고 해요. 그리고 봄, 가을 학기제로, 매일 저녁 수업을 엽니다. 약 서른 명의 자원 교사와 홈리스 학생이 한글, 영어, 글쓰기 같은 기초학문 교육, 컴퓨터와 스마트폰, 영화, 예술, 합창, 건강 같은 실용·문화 교육, 권리 교실 등 총 11개의 과목을 운영한다니 참 대단하죠. 수업이 주로 밤에 진행되는지라 '밤 야()' 자를 써서 '야학'이라고 부르지만, 이곳은 홈리스의 학교이기도 합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활동가. 사진=최인기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주방을 엿보니 오늘 당번은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경희 씨입니다식사 때가 되면 서로서로 당번이 되어 점심과 저녁 식사를 돌아가며 합니다. 오늘의 오마카세는 생선조림과 카레 김치와 국입니다. 설거지는 당연히 각자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하죠. 밥값은 누구나 1,000원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이 모든 것은 정기적으로 식자재를 보내주는 이웃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이렇게 아랫마을은 15년 동안 반빈곤 운동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같은 공간에서 십시일반 한솥밥을 나누는 식구로 활동 중입니다.

적자가 쌓이는 아랫마을. 사진=최인기

그런데 이들에게 걱정거리가 있지요. 안정적인 재정보다 월세와 공과금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빨라 적자가 쌓이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가지 원칙과 고집이 있지요. 정부로부터 독립해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죠.

대신 아랫마을 5개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들과 일반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체들도 대부분 가난한 빈민운동 단체다 보니 후원금이 충분하지 않지요. 매달 220만원의 적자가 난답니다. 상태로 라면 1년 후 월세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가난을 극복하자는 단체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역설이라 할까요? 이제 이글을 마무리 할께요. 아랫마을이 반빈곤 운동의 거점이자 홈리스 당사자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후원주점과 모금 활동을 한다는 소식입니다.

후원주점 포스터. 사진=빈곤사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