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또 미국 달 뜨나
[뉴스클레임] ‘영원한 우방’인 미국이 우리에게 ‘미국 쌀’을 먹여주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는 발끈했다.
자자손손 쌀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민족이다. 우리는 쌀 때문에 웃고, 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쌀시장 개방만은 있을 수 없었다.
대통령도 단호했다.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정권을 걸고 방어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랬으니 ‘반미정서’가 요란했다. 미국 쌀이 싫은 이유로 ‘밥맛’을 지적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었다. 쌀은 쌀알이 통통하고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 품종’과 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인디카 품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가 먹는 것은 ‘자포니카’라고 했다.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찰기가 없는 ‘인디카’는 밥맛이 없어서 아무리 가격이 싸도 싫다는 얘기였다. 차라리 우리 입맛에 맞을 ‘중국 쌀’을 수입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은 집요했다. 미국은 애초 중국의 쌀시장을 겨냥하고 있었다고 했다. 중국이 식량 부족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장기전망에 따라 쌀 재배를 확대하도록 권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는 바람에 ‘대타’로 한국과 일본 시장을 두드리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미국은 자기 나라의 쌀 농가를 위해서라도 한국의 쌀시장을 반드시 열어야 했다. 선거 때 ‘표와도 직결될 것이었다. 어떤 미국의 관리는 “한국이 2만 달러 소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밭을 골프장으로 바꾸는 식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식량안보’ 따위는 고려 대상 밖이었다.
당시 미국과 협상을 벌였던 정부과천청사의 공무원들은 고달팠다. 매일 같이 야근이었다. 퇴근할 때가 되면 달이 높게 떠 있었다.
푸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과천에는 미국 달이 뜨나!”
그런 압박 끝에 미국이 얻어낸 것은 ‘1%’였다, 쌀시장의 1%를 ‘의무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로 만족할 미국이 아니었다. ‘추가 협상’으로 개방 폭을 확대했다.
그런 결과, 지금 우리는 쌀에 513%의 높은 관세를 적용하면서도 5%의 낮은 관세로 해마다 40만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는 보도다. 미국 쌀은 그 가운데 13만 톤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가 줄어서 쌀이 남아도는데도 수입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 남아도는 쌀을 더 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의 수입도 허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 소고기 ‘1위 수입국’인데도 더 많이 팔아야겠다는 것이다. 감자 등 유전자변형작물(LMO)의 수입과, 사과·블루베리·체리 등 과일에 대한 검역완화 등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영원한 우방’이 온갖 농축산물을 다 제공할 작정인 듯했다.
싫다고 버티면 ‘트럼프 관세 폭탄’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관세 협상을 주도하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산물 부분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추가 개방을 시사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미국의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통상압박에 굴복해 또다시 농업을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제2의 FTA 투쟁과 제2의 광우병 촛불로 화답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데도 ‘미국 달’을 또 띄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