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이재현 CJ의 베팅

해외매출 52% 돌파한 CJ... "문화가 미래"던 1995년 확신 20조원 투자 마지막 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완전한 변신

2025-07-20     손혜경 기자
호주 울워스 매장에서 한 고객이 진열된 비비고 만두를 고르고 있다. CJ제일제당(회장 이재현) 제공

[뉴스클레임]

서울 서초구 CJ온스타일 본사 스튜디오. 지난 2월 7일 오후 2시께 이곳에 나타난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랐다.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짚고 직접 걸어서 현장을 둘러보며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보적 경쟁력으로 시장 선점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 회장이 현장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2021년부터 시작된 20조원 투자 계획의 마지막 해를 맞아, 식품에서 문화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제국을 완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설탕회사에서 K-푸드 제국으로=30년 전만 해도 CJ제일제당은 설탕과 밀가루를 만드는 평범한 식품회사였다. 하지만 1993년 33세의 나이로 제일제당 상무가 된 이재현 회장은 1995년 35세에 연매출의 20%에 달하는 3억 달러를 드림웍스에 투자하는 파격적 결정을 내렸다.

"당시 대기업이 영화에 투자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내부 반대도 극심했다." CJ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문화가 미래'라는 믿음 하나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그대로다. 식품에서 시작해 물류, 엔터테인먼트, 바이오까지 아우르는 CJ그룹이 탄생했고, 특히 식품 분야에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숫자로 증명하는 글로벌 성과=이재현 회장의 투자 철학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숫자다. CJ제일제당의 2024년 식품사업부문 매출 11조3530억원 중 해외 사업 매출이 5조5814억원(49.2%)을 차지했다. 특히 2024년 4분기 기준으로는 해외 매출 비중이 52%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2024년 북미 매출은 4조7천억원을 기록하며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 12%를 달성했다. 2018년 3649억원에서 2023년 3조3286억원으로 약 10배 성장한 기록은 업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이런 성과 뒤에는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총 18억4000만 달러(약 2조원) 규모로 미국 냉동식품 가공업체 슈완스를 인수했다. 이 중 실제 CJ가 부담한 금액은 1조5000억원으로, 단순한 M&A를 넘어 진정한 시너지를 만들어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투자 없이는 성과도 없다"

기자가 만난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재현 회장의 '투자 철학'을 주목한다고 했다.

CJ 한 임원은 "이 회장은 중요한 안건이 있으면 회의 하루 전 미리 보고를 받는다"고 전했다. 복잡한 내용을 회의에서 논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미리 이해한 다음 실무자와 깊이 있게 논의한다.

실제로 이재현 회장이 2021년부터 추진하는 CPWS(컬처·플랫폼·웰니스·서스테이너빌리티) 전략에 따르면, 2025년까지 총 20조원이 투입된다. 2025년은 이 대규모 투자 계획의 마지막 해로, 그간의 투자 성과를 가늠할 중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3자 계약물류(3PL) 시장 10위권 진입이라는 CJ대한통운의 목표나, 2027년 유럽 매출 5000억원 달성 시 해외 매출 비중 60%라는 CJ제일제당의 계획 모두 이런 투자에서 나온다.

■업계가 주목하는 '이재현식 경영'=최근 CJ그룹 주가 강세도 시장이 이재현 회장의 전략을 높이 평가한다는 방증이다. 2025년 상반기 들어 CJ(지주사)는 59.74%, CJ ENM은 32.59%, CJ제일제당(회장 이재현)은 4.31% 상승했다.

농심, SPC그룹, 오뚜기 등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이 여전히 내수 중심인 것과 대조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CJ는 이미 진짜 글로벌 기업이 됐다"며 "해외 매출 비중 50% 넘는 식품기업이 국내에 몇 개나 있겠나. 이 회장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는 걸 숫자가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25년, 20조원 투자의 마지막 승부수

하지만 이재현 회장의 시선은 이미 더 먼 미래를 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UAE 대통령, 9월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 부장관과의 만남은 중동 진출을 위한 포석이다.

"K-컬처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K-푸드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말했다. 해외는 아직 K-푸드를 경험해보지 못한 잠재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CJ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한 마이크로바이옴 사업이나 생분해 플라스틱(PHA) 등 친환경 바이오소재 사업이 그것이다.

특히 2025년은 "미국에서만 6조원 매출"이라는 목표 달성이 가능한 해로 전망된다. 현재 진행상황을 보면 충분히 달성 가능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2030 월드베스트 CJ"의 현실성='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라는 이재현 회장의 목표가 허황한 구호가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CJ제일제당은 미국 아시안 푸드 시장에서 이미 점유율 24.3%로 1위를 차지했고, CJ대한통운은 해외 34개국 276개 도시에 443개 물류거점을 구축했다.

이재현 회장은 최근 그룹 CEO 경영회의에서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으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20조원 투자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25년이 CJ그룹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30년 전 설탕회사 청년 경영자가 꿈꾼 글로벌 제국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투자 없이 성과 없다'는 철학을 실천해온 이재현 회장이 있다.

식품업계 맏형으로서 그가 2025년에 보여줄 마지막 카드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올해 초 서울 서초구 CJ온스타일 본사에서 직원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CJ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