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일 만에 땅 밟은 박정혜 "잘못은 니토덴코, 왜 고통은 노동자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 세계 최장 고공농성 해제 박정혜 "정부·국회서 문제 책임지고 해결해주길"

2025-08-29     김동길 기자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이 29일 오후 600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을 밟았다. 사진=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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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오니까 땅을 밟았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잘못은 어떻게 보면 니토덴코가 했는데 왜 고통은 노동자가 받아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600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마침내 땅을 밟은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29일 오후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1년 8개월간 이어온 고공농성을 공식 해제했다. 박씨가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옥상에 오른 지 6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1년 8개월, 정말 오랜 시간 고공 위에서 농성을 할 줄 몰랐다"며 "그 오랜 시간 동안 제가 고공에서 지금 이렇게 무사히 땅에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저희 투쟁에 항상 함께해주시는 동지들이 계셨기에 제가 위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이 정도로 많은 분이 오실 거라 상상도 못했는데, 저희 투쟁에 이렇게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정말 600일 동안 하루하루 어떤 날에는 힘든 날도 있었지만, 하지만 또 우리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즐거운 날도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승리해서 내려왔으면 더 좋았을 거지만, 그래도 제가 이 두 다리로 내려올 수 있게 해준 우리 동지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리고 앞으로 아직까지 저희 투쟁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정부와 국회에서 저희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더 이상 고공에 오르는 동지가 없기를 바라며 우리 노동자들이 정말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게 제가 바라는 건 그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의 고공농성은 일본 화학기업 니토덴코의 일방적인 한국 철수에서 비롯됐다. 일본 닛토덴코가 지분 100%를 가진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22년 10월 구미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그 해 12월 법인을 청산하고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 17명은 이듬해 2월 정리해고됐다.

박정혜, 소현숙 두 해고자는 지난해 1월 8일부터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올해 4월 27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476일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이후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혼자 농성을 이어왔다.

문제는 니토덴코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청산하면서도 사업 자체는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니토덴코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정리하며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 물량을 이전했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거부했다.

실제로 물량 이관 후 한국니토옵티칼은 고용승계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156명을 신규 채용했다. 지난해 닛토덴코에 배당한 금액은 509억원에 달한다. 당기순이익 501억원보다 더 많은 돈을 일본 본사가 챙긴 셈이다.

노동계는 이를 전형적인 '먹튀' 사례라고 규정했다. 외투자본인 니토덴코는 정부와 지자체의 토지 무상 제공·세제 혜택 등 국민 혈세를 지원받고서는 2022년 구미공장 화재 후 일방적 폐업을 선언하고 노동자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이다.

600일간의 고공농성 기간 동안 박 수석부지회장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여름에는 50도에 달하는 폭염을 견뎌야 했고, 겨울에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 버텨야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의 고공농성 해제는 정부와 국회가 노사교섭 개최와 '먹튀방지법' 제정을 약속하면서 이뤄졌다. 금속노조는 "당·정·대는 노사교섭 개최와 외국인투자기업 규제 입법 약속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금속노조는 "아직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땅에서 더 강고한 투쟁을 조직해 '먹튀' 자본 닛토덴코에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