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탄생을 알린 거인, 전유성 마지막 퇴장

'개그계 대부' 전유성, 향년 76세로 별세

2025-09-27     차현정 기자
‘개그계 대부’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사진=가족엔터테인먼트

[뉴스클레임]

한국 코미디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개그계 대부’ 전유성이 지난 25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유의 재치와 아이디어로 무대를 혁신했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후배들의 길잡이로 기억됩니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전유성은 폐기흉 증세가 악화해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과거 폐렴과 코로나19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최근에는 기흉으로 인해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생전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고,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지인들과 의견을 나눴다고 전해졌습니다. 

고인의 건강 이상은 이미 세간의 우려를 모았습니다. SNS에 공개된 야윈 모습으로 팬들의 걱정이 이어졌고, 지난달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대를 향한 열정만큼은 끝까지 식지 않았습니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전유성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뒤 방송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초기에는 원고를 쓰는 작가로 활동했지만 곧 직접 무대에 서며 입담과 기지를 선보였습니다. 1969년 TBC ‘쑈쑈쑈’를 시작으로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SBS ‘좋은 친구들’ 등 굵직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KBS ‘개그콘서트’ 초창기 멤버로 자리 잡으며 개그계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무대 밖에서는 누구보다 앞선 시각을 가진 기획자였습니다. 당시 ‘희극인’이나 ‘코미디언’이라는 명칭이 낡고 무겁다고 판단해 ‘개그’와 ‘맨’을 결합한 신조어 ‘개그맨’을 만들었고,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 통용됩니다.

예능을 넘어 공연에서도 전유성은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성악가와 개그맨이 함께한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 반려동물과 관객이 어울리는 ‘개나소나 콘서트’는 이색 무대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경북 청도군에 코미디 전용 극장인 ‘철가방극장’을 열고 4400회가 넘는 무대를 올리며 지역 공연문화의 활기를 이끌었습니다. 

2013년 출범한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도 명예위원장을 맡아 아시아 최초 코미디 축제의 뿌리를 세웠습니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도 한국 개그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코미디 문화 확산에 앞장섰습니다. 

전유성은 생애 내내 후배 개그맨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신인 발굴과 지원에 앞장섰고, 때로는 사비를 들여 꿈을 이어가도록 도왔습니다. 최양락, 이윤석뿐 아니라 김신영, 황현희, 김민경 등 많은 개그맨이 그의 격려와 지지를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전유성은 웃음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무대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연과 축제, 기획과 언어 발명까지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대중문화 속 깊은 골격으로 자리했습니다. 

전유성은 무대를 떠났지만, 한국 코미디사에서 그의 목소리와 궤적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는 웃음을 미래로 이어주는 다리를 남기고 조용히 퇴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