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경고] ①풀린 돈, 빠진 신뢰… 원화 가치 급락의 구조적 경고

2025-11-14     신나은 기자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며 물가 상승과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등 한국 경제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뉴스클레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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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연일 치솟고 있다. 명동 환전소 전광판에는 1달러당 1520원이 찍히고, 환전상들은 “이 속도는 코로나 때 이후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젓는다. 급등하는 환율은 곧 원화 가치의 급락을 뜻한다. 외환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원화 약세는 일시적 요동이 아니라 구조적 조정의 신호”라는 말이 돈다.  

현재 원화 가치 하락의 중심에는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의 병행’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놓여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총 통화량은 4400조 원을 넘어 GDP의 두 배 수준이다. 미국의 GDP 대비 통화량 비율(ELQ 지수)이 71% 선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경제는 실물보다 돈이 과도하게 부풀어 있는 셈이다. 한은 내부 관계자도 “실물 성장 속도보다 유동성이 훨씬 빠르게 증가해 환율 압력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통화가 많아지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만, 결국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금리 격차 역시 문제다. 2018년 이후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낮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현재 격차는 1.5%포인트에 달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 해외 투자자들이 원화를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든다. 실제로 최근 석 달 사이 외국인 자금 순유출 규모는 6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달러 강세보다 원화 매력이 더 크게 떨어진 구조”라고 지적했다.  

통화 팽창과 저금리의 병행은 경기 부양의 이름으로 유지돼 왔지만, 이제는 되려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고,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환율과 물가, 금리의 삼중고 속에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비용 부담이 현실화됐다. 인천항 수입업체 관계자는 “달러 결제 부담이 커져 납품 단가를 바꿔야 할 판”이라며 “가격을 올리면 판매가 줄고, 못 올리면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  

미국도 팬데믹 시기 대규모로 돈을 풀었지만, 이후 빠르게 유동성을 흡수하며 달러 신뢰를 되찾았다. 반면 한국은 통화량을 줄이기는커녕 늘렸다. 2025년 현재 ELQ 지수 200을 넘긴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투입해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 판단이 더 늦어질수록 신뢰 회복은 어려워진다.  

기자가 만난 서울 명동의 한 환전상은 “달러를 사려는 사람만 있고 파는 사람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돈의 양과 금리의 방향이 원화 신뢰의 기준을 흔드는 지금, 환율의 경고음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