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의 돌직구] 2025년 동인문학상 발표를 보면서

2025-11-17     김파란 편집위원
김파란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1982년 오에 겐자부로 등을 위시한 문학인들이 모여 <핵전쟁 위기를 호소하는 문학가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당시 문예춘추사는 자사에서 발간하는 정론지 <제군>을 중심으로 반핵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며, <반핵성명>을 집요하게 비난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소위 양심적 일본문학인들은 이 문예춘추에서 주관하는 상을 받거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오에 겐자부로도 그런 이들 중 한명이었다. 

물론 이름이 없어 출판계의 눈치를 봐야하는 신인작가라면 봐줘야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 정도의 브랜드네임이라면? 더구나 그가 문학 외적 발언에 적극적인 인물이라면? 이런 공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항의의 표시로 상을 거부한다거나 심사위원을 맡지 않아야 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이들의 이중성을 저널 리스트 혼다 가쓰이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반체제 조직이나 운동에 강연이나 모금 운동으로 협력하고, 대립되는 체제 측의 대표적 미디어에는 베스트셀러를 공급하여 협력함으로 체제와 반체제 양쪽에 '웃는 얼굴'을 내보인다. '체제 안에 있으면서 반체제 비판도 봉쇄'하는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지식인의 이러한 빈곤한 정신, 지조없는 예술을 중도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즉 자신과 먼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정작 그 모순이 자기 내부로 가까이 들어 왔을 때는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에티카)로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배고픔과 외로움이었다. 어느 하루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집 밥상을 기웃거리지는 않았다. 그 자존심이 없었다면 나는 더 허기졌을 것이다. 문학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조선일보가 어떤 이들의 고통과 피로 세워진 악의 탑인지 문학인들이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썩은 고기를 입에 넣고도 부끄럽지 않다면 그 문학은 이미 죽었다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과 기념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학교, 언론, 지자제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기구가 대대적으로 동원하는 담화나, 포상체계는 문화적 경관을 바꾸어 어떤 기억은 소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재호출해서 재형성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정치 권력의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학계다.

친일문학이 범했던 민중에 대한 폭력성은 지우고, 일제 군국주의에 부역한 김동인이 아닌, 한국 근대문학을 이끈 선구자로 그 이름을 딴 문학상을 만들어 이를 선양하는 작업에 한국 대표 작가들이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문학의 반민중성에 대한 비판적 반성 작업을 해야 할 비평가들이 오히려 이런 잘못된 기념을 전통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학의 행태에 오늘날 시인으로 가장 큰 명예는 미당 문학상, 소설가로는 동인 문학상, 문학 비평가로는 팔봉 문학상이 만들어 진 것이다. (모두 일제 군국주의에 부역한 지식인들이다. 미당 문학상은 중단 되었다)

친일문학상과 친일문학 출판과 연구는 분명하게 다른 문제다. 친일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책을 만들고 이를 평가받게 하는 일은 충분히 값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문학사의 참된 면모를 드러나게 하여 평가를 받게 한다는 의미에서 숨겨두기보다는 오히려 출판을 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 타탕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친일작가들의 개인 전집을 비롯하여 공개는 매우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친일문학의 출판 공개와 친밀문학가를 내건 문학상의 제정은 전혀 다르다. 그건 친일행위로 인하여 빚어진 한반도 민중들의 비극적 삶과 그 과정에서 흘려야 했던 숱한 눈물의 고통을 지우고 문학을 그 위에 올려놓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어떤 것(시스템)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저런 역사의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설사 그가 문학가라고 할지라도 문학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자신이 그 문학상을 명예로 받았 들였다면 이 문학상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대중의 선택도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나 비평가들이 자신의 선택은 문학 안의 일이고 대중의 비판은 문학 밖의 어떤 점잖지 못한 비난으로 비쳐지는 분위기의 발언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 사회적 논란에 대한 수상자의 선택은 '추앙' 과 '옹호'가운데서가 아니라 '비판' 가운데서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또한 작가나 교수라는 직업과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외적 발언과 선택을 폄훼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허나 그 구조를 말해야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소위 생각이 있다는 문학인들도 여러 방식을 통해 보수언론인 조중동을 비판하지만, 문학계 내부의 모순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거나 대충 넘어간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친일문학상 수상자에 대한 것이다. 그래도 문학계만큼 깨끗한 곳도 없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축하할 일에 축하해주자...즉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내부(문학계) 의 모순에 대해서는 너무도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문학인으로서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로서 서로 칭송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요즘 흔한 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이 아닌가?

결론인즉 한국문학계는 창작이든 비평이든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성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심각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니었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사회가 어떤가를 생각해보라! 세상 온갖 거짓말쟁이, 사기꾼, 뻔뻔스러운 궤변가, 오만한 권위주의자, 독재자, 가슴에 번쩍번쩍 그 무엇을 자연스럽게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모르기에 그러고 다니는 것이다. 오늘날 문학인들은 현실이라는 거울에 자신들 모습을 비쳐보기 바란다. 각종 문학상과 국가 지원금이라는 스펙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자신들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