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 서서] 흑산도 흑백 삽화, 태풍이 묶어둔 운명의 덫
-시간의 문턱에서 외친 절규
[뉴스클레임]
길 위의 사람은 시간의 질서를 거부하는 방랑자다. 흘려보낸 시간을 기어이 되감아, 바스러진 기억의 조각들을 움켜쥘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삶을 그저 ‘기억되는 것’으로 여길 때, 그들에게는 삶은 매 순간 새로이 ‘발견되는’ 그 무엇이다. 퀴퀴한 다락방 깊숙이 잠들어 있던 먼지투성이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 희미했던 지난날의 아스라한 기억들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생생한 빛깔로 되살아난다.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숨 쉬지 않는 기억이라면, 그건 어쩌면 지난날의 삶 전부가 거짓이었다는 처연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다락방 구석에서 곰삭은 기억들을 기어이 끄집어내는 작업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혹독하고 힘들다. 하지만 진심으로 낡은 일기장의 페이지를 뒤적이는 자는 참되고 복 될지 어라.
흑산도의 비릿한 바람과 함께, 몇 걸음 간격으로 발자국들이 조용히 이어졌다. 그 선두에는 단발머리 여자가, 그 뒤를 두 명의 여자와 한 남자가 그림자처럼 따랐다. 흑산도의 변덕스러운 비바람이 이따금 얼굴을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뒤따르던 두 여자와 남자는 억지로라도 '깔깔'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나 두 여자의 수다는 이미 남자에게 닿지 않는 메아리였다. 동행하는 두 여자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있었다. 남자의 영혼은, 얼마 전부터 오직 앞서 걷는 단발머리의 뒷모습에, 그녀의 어깨 위로 흩날리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단발머리는 굳이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어깨를 적시는 빗물조차 무시한 채, 그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들은 이름 모를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목적지를 제안한 이 역시, 다름 아닌 단발머리였다.
놀랍게도, 그들 넷은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불과 몇 시간 전, 흑산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우연히 스친 대화가 이 길 위의 동행을 만든 전부였다. 영화감독은 그 역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첫눈에 인연을 알아본다고 한다. 주저함이 있다면 아직 인연이 성숙한 게 아니다. 단발머리의 존재를 보면서 그 인연의 순간이 왔음을 남자의 영혼은 직감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남자의 이성은 그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태풍으로 인해 배 출항이 불확실하다'라는 절망적인 안내 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전날 밤, 야산 공터에 텐트를 쳤다가 새벽녘 몰아친 비바람에 잠을 설친 남자는, 텐트가 찢어지는 비명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어느 순간, 남자 곁으로 뒤늦게 도착한 두 여자, 그리고 한 걸음 건너서는 단발머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 방송을 듣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보아서는 그들은 오늘 꼭 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거친 파도는 이날의 출항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장 발 디딜 곳 없는 나그네들에게, 숙소는 생존 그 자체였다.
두 여자는 예리항 근처의 여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그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 사이로, 단발머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온 후 쭉 머물렀던 해수욕장 마을의 민박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해수욕장 마을에는 민박집이 더러 있어요.” 그녀의 무심한 한 마디는 이들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바다를 향해 얼마나 걸었을까. 아마 한 시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윽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변이 활처럼 굽이치는 아담한 마을에 들어서자, 그제야 단발머리가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짧게 고개를 까딱 숙이더니, 종종걸음으로 골목길 안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같은 집에 머물지 모른다는 덧없는 희망에 부풀었던 남자의 얼굴에는, 찰나의 실망감이 짙게 드리웠다. 그는 단발머리 뒤편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그저 사라지는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두 여자와 남자는 어렵지 않게 민박집을 구했다. 민박집 근처에는 마을 식수로 쓰이는 오래된 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비용을 아끼는 동시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남자에게 함께 한방을 쓰자고 제안했다. 흑산도의 태풍이 묶어낸, 기묘한 낯선 이들의 동거가 시작된 셈이었다.
여자들은 충북 보은 농협의 직원들이었다. 평생 섬 여행은 처음이라는 두 동료는 이 여름 휴가를 흑산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착실하게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전형적인 직장인인 그들과 달리, 남자에게는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는 오직 하나, '뜨내기 장돌뱅이'였다. 올여름 한 철만 활동하는 떠돌이 장사꾼,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대학생이었던 그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자마자 동대문 의류 상가에서 재고 옷을 사들였다. 배낭 두 개에 옷을 꾹꾹 눌러 담고 무작정 지방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서툰 그에게 고난은 일상이었다. 재래시장에서,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옷을 늘어놓았다가 경비에게 쫓겨난 적도 있었고, 때로는 옷 한 벌 팔아보지 못하고 보호비만 뜯기기도 했다. 티셔츠 한 장도 팔지 못하고 자리에서 쫓겨난 적도 부지기수였다. 잠자리는 겨우 몸 하나 누일 텐트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작은 텐트 속에서, 그는 매일 '내일이면 옷을 다 팔 수 있을 거야…' 하는 찬란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밤마다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그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고통스러웠다. 어쩌면 그 고통은 육체의 것이 아니라,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정신의 아픔이었을지도 모른다.
큰 키에 비쩍 마른 몸, 어딘가 병약해 보이는 남자가 빵빵한 배낭을 힘겹게 메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괴 그 자체였다. 남자가 이번 여름에 장돌뱅이 일을 결심한 단 하나의 이유는 다음 학기 등록금 때문이었다. 그는 등록금은 물론, 새로운 삶의 숙소마저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부풀린 희망 속에 있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희망이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삶의 지혜는 아직 그에게 닿지 않았다.
7월 초에 시작된 장돌뱅이 생활은 어느덧 8월 중순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그동안 동대문 시장을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처음의 기대와 달리 그의 지친 마음과 얇아지는 주머니는 날마다 절망을 더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다음 학기 등록금에 대한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이 일을 당장 때려치울 수도 없었다. 당시 방학 중 목돈을 벌 만한 마땅한 아르바이트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푼돈으로 위세 하는 주변 사람들의 빈곤함에 지친 남자는 학교를 휴학하고 강원도 탄광으로 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남자는 점차 자신의 기대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은 어리석은 허영심일 뿐, 불안을 달래기 위해 미래를 섣부른 예측으로 포장하는 것 또한 나약한 자들의 징표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기대 섞인 예측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 삶의 강력한 법칙이었다.
세상 어디 쉬운 일이 있으랴마는, 장돌뱅이 생활은 특히나 고단했다. 충분한 물건 확보, 편리한 이동 수단, 그리고 지역 상권에 대한 정보, 이 모든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세 번째 배낭을 메고 서울을 떠났다. 깊은 절망 속에서 그가 이번에 선택한 곳은, 전라도였다. 절망은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정신적인 공허, 그러나 그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태에서도, 전라도에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어떤 신비로운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이 어리석은 희망마저 없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 세상과의 생명의 끈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그래, 황금빛 희망의 끈을 찾으러 가보자꾸나.”
길을 떠나는 내내 남자는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자의 신음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인연’이라는 운명의 신에게 거는 간절한 주문이었다는 것을 그는 한참 후에야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연의 황금빛 실은, 이미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감겨들고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 단발머리 여자 또한 휴가철을 피해 8월 말로 휴가를 늦췄다. 본래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도 있었지만, 백화점 동료들이 미리 휴가를 쓰는 바람에 그녀의 휴가가 자연스레 뒤로 밀린 탓도 있었다.
“여자 혼자 여행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단발머리 여자가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은 순간의 결정이었다. 휴게소에서 휴가 계획에 들떠 떠드는 동료들을 보며, 그녀는 갑자기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싫어졌다. 관습이라는 굴레에 속박되며 사는 사람들은 홀로 선 자의 자유를 혐오하고, 그런 삶을 고독하다고 헐뜯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결국, 혼자가 아니던가.
여행지는 휴가 전날 밤, 흑산도로 결정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젊은 여자가 홀로 섬 여행을 떠나는 것은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결정에 있어 단순해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녀는 어린아이와 같은 즉흥성으로, 단순하게 흑산도행을 택했다.
순간의 결정은 때로는 어떠한 이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이유 없는 찰나의 판단 때문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특별할 것 없는, 그 이유 모를 순간이야말로 운명의 신이 주사위를 던지는 바로 그 순간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 순간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치고, 한참 뒤에야 깨닫고 감탄하게 된다. 흑산도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바로 그러했다.
남자는 전라북도 진안 재래시장에서, 팔다 남은 옷 꾸러미를 배낭에 쑤셔 넣었다. 진안을 마지막으로 장사를 접은 것이었다.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작지만 강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떠나라.”
그것은 작지만 강력한 울림이었다.
그 순간, 흑산도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흑산도의 물새들과 자신의 애달픈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불현듯 잠식되었다. 파시(波市)는 말 그대로 ‘바다 위 시장’이었다. 물고기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선원과 선주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상업 시설이 생겨났다. 술집인 색주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한때 ‘물새’라 불리던 작부들만 수백 명에 달했다. 어민들에게는 황금어장이었지만, 동시에 고된 삶의 애환과 인간적인 욕망이 뒤섞인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흑산도는 손암 정약전, 면암 최익현 같은 이들이 유배당했던 섬이기 전에, 어쩌면 사랑이 닻을 내리는 섬이었다. 전광용 작가의 ‘흑산도’에는 ‘복술’이라는 처녀와 ‘용바우’라는 청년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섬을 떠나고 싶어 하던 복술은 결국 섬 여인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섬에 남게 된다는 애잔한 줄거리였다. 운명은 늘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는 법이었다.
비쩍 마른 남자와 단발머리 여자가 비슷한 시기에, 그토록 우연히 흑산도로 향한 것은 신의 장난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둘 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사소한 일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삶을 살았을 터였다. 우연의 일치 속에는 강력하면서도 끈질긴 삶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우연의 의미를 기어이 알아차린 영혼의 선택뿐이었다.
두 여자와 남자는 마을 우물 앞집에서 민박을 구했다. 민박집 할머니는 태풍의 변덕은 섬사람인 자신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며, 언제 배가 뜰지 모른다고 했다. 마을은 아담했다. 뒷산에 오르니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마을에 태풍의 정적이 감돌았다.
비가 잦아들자, 두 여자와 남자는 마을 뒷산에 올랐다. 중턱에 설치된 그늘 해먹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태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 평온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두 여자는 초조함에 전전긍긍했다. 민박집 주인 방에서 전화를 걸고 나와서는 입을 삐죽 내밀고 ‘상사가 잔소리한다’라고 투덜거렸다. 80년대는 여름휴가조차 3, 4일 이상 쓰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며 365일 내내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들의 초조함은 당연했다.
두 여자는 전화를 걸고 나올 때마다, 마치 대답을 바라지 않는 하소연처럼 되뇌었다. “언제 태풍이 그칠까요?” 그것은 날짜가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의 표출이었다.
해수욕장 민박집에서 이틀을 보냈다. 그동안 두 여자와의 '이상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남자의 신경은 오직 단발머리 여자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을 우물가에 단발머리가 나타났다. 남자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가리키며 어린아이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단발머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묵묵히 물을 길어 자신이 가져온 과일을 씻더니, 이내 왔던 길을 되돌아 사라졌다. 남자로서는 허탈한 순간이었다. 여자의 냉랭한 표정에 말 한마디 붙일 틈조차 없었다. 이 세상에서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젊은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묘하다(妙)’라는 한자에 ‘여자 녀(女)’와 ‘적을 소(少)’가 붙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그날 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괴한이 침입했고, 방문가에서 자던 여자를 누군가가 건드린 모양이었다. 인기척에 남자가 상체를 일으키자, 괴한은 후다닥 달아났다. 남자는 소리치며 괴한을 쫓았지만, 골목이 꺾이는 지점에서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더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두 여자는 남자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그 사건 이후 남자는 단발머리 여자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흘째 되는 날 새벽, 갑자기 민박집 할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배가 뜬다!” 짧고 굵은 외침에,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 분주해졌다.
흑산도 여객선 터미널로 향하는 길, 다시 한번 길 위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단발머리 여자가 앞장서고, 여자 둘과 남자가 뒤를 따르는 형국이었다. 두 여자는 마치 단발머리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중에 남자가 발걸음을 빨리했다. 단발머리에게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두 여자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결국 단발머리를 앞질러 걸어갔다.
마침내 배가 떠났다. 며칠 만의 출항이라 그런지, 승객들로 배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넘쳐나는 승객들 사이에서도 남자는 단발머리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말 붙일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가 목포에 도착했다. 하선하는 사람들 틈에서, 남자는 순간적으로 단발머리의 손목에 빛나는 황금색 실이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흐릿한 뱃머리 불빛 아래서도, 그것은 분명 찬란한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수시로 들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손목에 감긴 황금색 실은 인연의 신이 건네주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반드시 맺어준다.’ 그는 ‘이 인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다. 항상 주눅 들며 살아온 그가, 이토록 강렬한 확신으로 운명을 직시한 것은 난생처음인 일이었다.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목포역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단발머리는 여전히 앞서갔다. 남자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목포역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두 여자와 단발머리, 그리고 남자의 목적지가 달랐다. 두 여자와 단발머리는 서울행 기차를 타지만, 남자는 그보다 한 시간여 뒤에 출발하는 경상도행 기차를 타야만 했다. 운명의 갈림길이 코앞이었다.
목포항에서 내릴 때 보았던 그 황금색 실을 떠올리며, 남자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연을 맺어준다는 황금색 실을 보고서도, 단발머리를 이대로 놓칠 것 같은 초조함에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두 여자가 먼저 개찰을 통과하면서 찰나의 틈이 생겼다. 단발머리가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무원이 개찰하는 바로 그 순간, 남자는 온 힘을 다해, 마치 자신의 모든 삶을 건 듯 단발머리를 향해 다급하고 절규하듯 외쳤다.
“전화번호는요?!”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시작만큼이나 중간, 그리고 특히 마지막 장면이 아주 중요한, 삶이 이토록 신비로운 것은, 바로 그 속에 운명이 감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도 종종 뒤를 돌아보며, 운명이라는 신비를 깊이 음미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특히 이 감성 가득한 가을날에는 더욱이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흑산도를 찾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딱 한 번, 아무도 모르게 흑산도를 찾아가려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삶에 지쳐 있었다. 삶이 온통 잿빛으로 물들고, 모든 일에 절망했던 그 순간, 흑산도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흑산도는 나에게 ‘인연의 고향’이자, 나를 보듬어주는 ‘신들의 자궁’과 같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반드시, 기어이 흑산도에 다녀올 생각이다. 여전히 시간의 장 속에 갇혀있는 젊은 날의 흑산도 삽화를 끄집어내어, 다시금 생생하게 그려보고 싶은 까닭이다. 추억이란 단순히 진열장 속에 놓인 박제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날의 낡고 빛바랜 흑백 삽화를 기어이 끄집어내어 새롭게 완성하는 것,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숭고한 작업이라는 것을 삶의 뒤안길에서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