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기 칼럼] 예산 ‘87만 3517냥 7전 9푼’

2025-11-24     문주영 편집위원
플리커

 

[뉴스클레임]  정조 임금은 창경궁 동쪽 담에 월근문(月覲門)을 만들었다. 부친인 사도세자를 모시는 경모궁(敬慕宮)과 통하는 문이다. 경모궁은 원래 사도세자가 사망한 뒤 영조 임금이 만든 수은묘(垂恩廟)였다. 이를 정조가 경모궁으로 고쳤다.

정조는 그 경모궁 안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사도세자의 사당을 항상 바라보도록 했다.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아예 문을 만들고 수시로 참배하러 다닌 것이다. 정조는 효자였다.

정조 임금의 지극한 효성은 백성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능행(陵行)을 하기 위해 1년에도 여러 차례나 주교(舟橋)‘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주교는 배다리, ‘한강대교라는 게 없던 당시여서 배다리를 만들어서 한강을 건너야 했다.

배다리를 만들려면 관·사유선(官私有船) 38척을 일렬로 띄워 놓고 그 위에 판자 1039매를 깔아야 했다. 그리고 호교선(護橋船) 12척으로 주교 좌우를 연결해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그 배다리를 완성하는 데 보통 20여 일 걸렸다. 그동안에는 한강의 수운(水運)이 중단되어야 했다. 수운은 서울인 한양으로 드나드는 유일무이한 교통수단이었는데, 그걸 막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주교를 설치할 때마다 한강 일대의 사유선을 징발했다. 백성에게는 고통이었다.

정조는 수원성도 쌓았다. ‘화성(華城)’이다. 흉년으로 백성이 굶주리고 유민이 늘어나고 있어도 수축을 강행했다. 화성 성역에는 왕권 강화 목적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무거운 돌덩어리인 석재를 들어 올려 운반할 수 있는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하기도 했다. 거중기는 공사비용과 기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화성 성역에 들어간 비용이 상세했다. ‘87351779이다. 이 가운데 석재의 가격이 1369609전이었다. 돌덩어리의 숫자는 201403개라고 했다. 공사에 동원된 백성과 기술자 등에게 지급한 인건비는 3110922푼이었다고 했다. ‘단위까지 기록한 것이다. 비용을 부담한 기관은 어영청 203000, 금위영 133000, 기영과 완영 각각 10만 냥 등등이었다고 했다.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또 쪽지 얘산, 코드 예산, 짬짜미 예산 논란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는 예산은 크게 늘리면서, 지난 정부 관련 예산은 줄이거나 없애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예산 원안에는 없었다”, “정권 교체를 도운 우군에 대한 대가성이라는 야당의 비난도 들리고 있다.

해마다 재탕되는 예산 논쟁이다. 올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공수교대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예산안은 728조 원 규모로 올해보다 8.1%나 늘어난 역대 최대라고 했다. 예산 증가율도 2022년의 8.9% 이후 가장 높다고 했다. 내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 등을 고려하면 과다한 예산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나랏빚이 많은 상황에서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는데, ‘잡음은 여전히 터지고 있다. 그래서 돌이켜보는 정조 임금 때의 단위까지 기록한 투명 예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