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 꽁트] 할멈 행복 영감 행복②

2018-08-06     양동일 작가

1편에 이어~

그나저나 그녀는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시계바늘은 6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그는 안달을 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어젯밤 사위 녀석이 할멈 몰래 슬그머니 손에 쥐어준 100불 짜리 지폐와 오늘 용돈 10불이면 아쉬운 대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봉투를 열어보았다. 여늬 때와 달리 100불 짜리가 눈에 화 들어왔다. 할멈이 뭔가 훼까닥 돌아 버렸나? 그는 놀란 토끼눈을 한 채 100불짜리 지폐를 내려다보았다. 지폐엔 노란 메모가 붙어 있었다.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면 다 써도 좋지만 생각나지 않으면 10불만 써야함. 저녁6시전에 귀가할것- 오늘이 무슨 날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허 맹달 선생은 오늘이 무슨 날?을 연속 되 뇌이느라 그녀가 벤치 옆 자리 에와 앉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어쩌다 고개를 돌렸을때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심장이 어름처럼 차가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왔구나!”

그는 탄성을 질렀다. 너무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었다.

잘 왔어요. 꼭 올 줄 알았어요. 커피 한잔 할래요?”

한번 말문이 터지니 계속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인사로 아는 체만 하고는 묵묵부답인 채 호수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헤엄쳐가는 오리 떼의 움직임에 시선을 꼿고 있었다.

아저씬 뭐 하는 분이세요?”

? 정년퇴직 하고 먹고 대학생이지!

그럼 시간 있으시겠네요. 절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호수에 시선을 둔채 말하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도움이 되 줄?”

친정 어머님이 돌아 가셨어요. 양로원에서 외롭게, 열흘 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떠나가 버렸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나 봐요!”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을 있고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 먹어도 견딜 수가 없어요. 병든 어머니를 버리다 시피 양로원으로 보내고,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었어요. 어머닌 사위 곁으로 날 되돌려 보내려 아무도 몰래 약을 먹었나 봐요.”

허 맹달 선생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장례식에 같이 가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어요. 알리고 싶지도 않지만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 겁나고 힘들어요!”

하루를 그녀를 위해 보내고 집에 왔을 땐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드라이브웨이엔 낯선 차가 하나 있었고 집안에서는 할멈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요란스러웠다. 허 맹달 선생은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뒷 통 수를 쥐어 박힌 듯한 아픔을 느꼈다.

-! 오늘이 무슨 날이지?-

하루 종일 잊고 있었던, 그리고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그 메모가 이 순간에야 떠오른 것이다. 넓은 응접실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고 낯선 손님은 모 여성잡지 기자라 했다.

할머님은 무척이나 행복하신가 봐요. 결혼 50 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행복한 결혼생활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기자의 쏟아지는 질문을 가로 막듯 할멈은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하고 있었다.

비결이란 특별한게 아니고, 사소한 일들, 일테면 집을 어디에 장만 할것인가? 아이들 학교나 장래의 문제, 결혼문제, 그이가 벌어오는 돈을 쓰는 일, 같은 것은 그이가 신경 않 쓰게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그이는 대국적인 문제에나 관심 갖도록 배려했지요. 인류의 구원, 세계평화 남북문제, 자연 환경보전 연구 같은 것이지요!”

기자가 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돌아가고 나자마자 할멈은 짜증스럽게 한마디를 내 뱉는 것이었다.

당신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는 것도 다 내덕분인지나 알라구!”

-아암 알다 뿐이겠나!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지-

허 맹달 선생은 입을 다문 채 속으로 뇌 까렸다. 50 년이란 덧없이 가버린 세월을 되돌려 받을 순 없고, 오늘 하루 같이 보낸 그녀의 고운 얼굴과 마음씨를 떠올리며 내일 새벽이 빨리 와달라고 조바심 치며 잠자리에 들었다.

끝.

▶양동일 작가소개(프로필 순천중고 졸업, 한국외대 영어과 졸업,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 졸업, 재미 문인협회 회원, 현)재미꽁뜨작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