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 꽁트] 할멈 행복 영감 행복②
1편에 이어~
그나저나 그녀는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시계바늘은 6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그는 안달을 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어젯밤 사위 녀석이 할멈 몰래 슬그머니 손에 쥐어준 100불 짜리 지폐와 오늘 용돈 10불이면 아쉬운 대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봉투를 열어보았다. 여늬 때와 달리 100불 짜리가 눈에 화 들어왔다. 할멈이 뭔가 훼까닥 돌아 버렸나? 그는 놀란 토끼눈을 한 채 100불짜리 지폐를 내려다보았다. 지폐엔 노란 메모가 붙어 있었다.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면 다 써도 좋지만 생각나지 않으면 10불만 써야함. 저녁6시전에 귀가할것- 오늘이 무슨 날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허 맹달 선생은 오늘이 무슨 날?을 연속 되 뇌이느라 그녀가 벤치 옆 자리 에와 앉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어쩌다 고개를 돌렸을때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심장이 어름처럼 차가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왔구나!”
그는 탄성을 질렀다. 너무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었다.
“ 잘 왔어요. 꼭 올 줄 알았어요. 커피 한잔 할래요?”
한번 말문이 터지니 계속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인사로 아는 체만 하고는 묵묵부답인 채 호수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헤엄쳐가는 오리 떼의 움직임에 시선을 꼿고 있었다.
“ 아저씬 뭐 하는 분이세요?”
“ 나? 정년퇴직 하고 먹고 대학생이지!
“ 그럼 시간 있으시겠네요. 절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호수에 시선을 둔채 말하고 있었다.
“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도움이 되 줄?”
“ 친정 어머님이 돌아 가셨어요. 양로원에서 외롭게, 열흘 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떠나가 버렸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나 봐요!”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을 있고 있었다.
“ 아무리 마음을 다져 먹어도 견딜 수가 없어요. 병든 어머니를 버리다 시피 양로원으로 보내고,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었어요. 어머닌 사위 곁으로 날 되돌려 보내려 아무도 몰래 약을 먹었나 봐요.”
허 맹달 선생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 오늘 장례식에 같이 가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어요. 알리고 싶지도 않지만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 겁나고 힘들어요!”
하루를 그녀를 위해 보내고 집에 왔을 땐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드라이브웨이엔 낯선 차가 하나 있었고 집안에서는 할멈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요란스러웠다. 허 맹달 선생은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뒷 통 수를 쥐어 박힌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아! 오늘이 무슨 날이지?-
하루 종일 잊고 있었던, 그리고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그 메모가 이 순간에야 떠오른 것이다. 넓은 응접실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고 낯선 손님은 모 여성잡지 기자라 했다.
“ 할머님은 무척이나 행복하신가 봐요. 결혼 50 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행복한 결혼생활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기자의 쏟아지는 질문을 가로 막듯 할멈은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하고 있었다.
“ 비결이란 특별한게 아니고, 사소한 일들, 일테면 집을 어디에 장만 할것인가? 아이들 학교나 장래의 문제, 결혼문제, 그이가 벌어오는 돈을 쓰는 일, 같은 것은 그이가 신경 않 쓰게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그이는 대국적인 문제에나 관심 갖도록 배려했지요. 인류의 구원, 세계평화 남북문제, 자연 환경보전 연구 같은 것이지요!”
기자가 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돌아가고 나자마자 할멈은 짜증스럽게 한마디를 내 뱉는 것이었다.
“ 당신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는 것도 다 내덕분인지나 알라구!”
-아암 알다 뿐이겠나!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지-
허 맹달 선생은 입을 다문 채 속으로 뇌 까렸다. 50 년이란 덧없이 가버린 세월을 되돌려 받을 순 없고, 오늘 하루 같이 보낸 그녀의 고운 얼굴과 마음씨를 떠올리며 내일 새벽이 빨리 와달라고 조바심 치며 잠자리에 들었다.
끝.
▶양동일 작가소개(프로필 순천중고 졸업, 한국외대 영어과 졸업,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 졸업, 재미 문인협회 회원, 현)재미꽁뜨작가 활동)